분명 몇 해 전까지는 사소한 일에도 기분이 널뛰어 다시 중심을 찾기까지 꽤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통 그렇지가 않다. 어제는 누군가 내게 '화내는 법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남겼다. 생각해 보니 언제 마지막으로 얼굴을 붉혔는지 잘 모르겠다.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 이따금씩 쿡쿡 상처 주는 사람들은 다 이해해 줄 만한 거리를 뒤에 달고 있다. 예로 근래에 일이 바빠 시들하게 지쳐있거나 유년기의 뿌리가 아주 깊은 상처, 지난 사랑에서 다친 마음같이 이런저런 어처구니없는 말과 행동에는 다 그만한 명분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이해 못 할 것은 하나 없고 그러면 화가 정말로 나지 않는다.
남들보다 성숙한 사람이라고 으스대고 싶지는 않지만,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하나하나에 그럴만한 이유를 부여하고 '그러려니' 이해하는 태도는 끝끝내 유지하려 노력하고 싶다.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잘근잘근 씹어 용서해버리는 습관은 여러모로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용서. 용서. 용서. 행복의 무수한 키워드 중 하나가 용서다.
밖으로 향하는 많은 용서들은 결국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 하나하나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된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아등바등 애쓰지만 내게 떠넘겨진 것들은 그나마의 이유를 붙여 눈감아주는 게 여러모로 낫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