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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

by 영주

인간의 인간다움은 본능을 거스르는 것을 미덕으로 삼음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짐승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매 순간 날뛰는 본능을 채질해야 한다. 이 말을 인간이 짐승보다 어떤 우월한 면모를 뛰어나게 갖추고 있다는 뜻으로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본능에 이끌려 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짐승과 달리 인간은 본능대로 살면 끝없이 추잡해지기 때문이다.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을 자주 한다. 특히 작은 개와 함께 살게 된 이후 더 자주 그렇게 느끼고 말하고 있는데, 개가 살아가는 태도를 가만 살펴보면 정말 그렇다. 본능에 충실히 따르며 살지만 결코 배신하거나 이유 없이 해하는 경우가 없다. 실리를 따져가며 감정을 베풀지 않고 잘못을 아주 쉽게 용서해 주는 넓은 배포도 가지고 있다. 거절의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작은 신호로도 불쾌를 알아채 욕심을 버리기도 한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개가 사람보다 나은 점은 수도 없이 많아서 가끔이라도 우리는 개를 보고 배워야 할 때가 있다. 개를 포함한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살아도 무리 속에서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데, 사람은 아마 본능에 따르기 시작하면 얼마 안 가 서로 죽여 멸종하지 않을까 싶다.


'본능'이라는 주제로 생각을 풀어내기 시작하니 교육자로서 고민했던 내용이 떠오른다. 아주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가르친 적이 있다. 어리기도 어렸지만 언급하기 어려운 이유들로 또래보다 덜 성숙한 아이들이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아이들이 성숙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성숙한' 아이들은 어른에게 사랑받기 위해 천진함을 영악하게 숨길 줄 아는 아이들이다. 여하튼 그 애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이 시기의 아이들은 다소 본능에 따르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무리 속에서 성장 시기에 비해 체구가 작거나 유약한 성향을 가진 친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그야말로 '날 것'이었다. 무리 속에서의 관계성과 묘한 감정의 흐름이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다소 거북해서 자주 교실 밖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해지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어린아이들이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태도를 어떻게 훈육하여 교정해 줘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렇게 타고난 것인데 뜯어서 예쁘게 고쳐주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교육자가 아니라 사육사가 돼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성악설적인 고민의 결론은, 인간은 운 좋게 높은 지능을 갖고 태어나 세상의 주인인 양 살기 때문에 그 대가로 본능을 거슬러야 인간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교육자는 어린아이들이 자꾸만 존재감을 보이는 본능을 치열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든 배우도록 해야 한다.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것은 그렇게 살아도 그 안에서 질서를 찾는 짐승만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능대로 살며 피해를 흩뿌리는 사람들을 더러 마주한다. 생각하는 법을 아예 잊은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이제는 이해를 낭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그들을 인간이 아니라 본능의 노예나 덜 진화된 짐승쯤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물론 나도 그런 몹쓸 것이 되지 않으려 본능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사육해야 한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으면 안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만 비로소 인간으로 살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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