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무의식'의 개념에 꽂혀 필요 이상으로 곱씹어 본 적이 있다. 무의식이란 얼마나 깊고 또 쉽게 드러나는가에 대한 고찰이 주를 이뤘는데, 매 번의 상념이 그래왔듯 딱 부러지게 결론난 생각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그 단어가 떠올라 얼기설기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한 성격하는 사람들 틈에서 막둥이로 태어나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읽으려 애쓰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당연히 나는 신이 아니고, 신내림 받은 무당은 더더욱 아니기에 어설프게 내린 판단이 정말일 확률은 거의 없거나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때때로 보이는 상대의 무의식은 자주 내게 상처를 주었다.
술자리에서 친구가 구토하듯 뱉어낸 말은 내 상황과 그 안에 있는 나를 얕잡아보는 느낌이었다. 순간 실언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한 얼굴을 비추자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집에 오는 길 내내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고 그다음 날에도 되새겨 보았는데,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의중을 따져보는 습관이 친구 한 명을 또 잃게 했구나 싶어 내가 되려 원망스러웠다. 차차 마음을 열어가던 친구의 무의식 속에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서글프기도 했다. 무의식은 참 깊지만 겨우 소주 서너 잔에 그 모습을 드러내니 얼마나 얄팍한가 하는 원망도 들었다.
무의식은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누구에게 내 지저분한 무의식을 들킬까 봐 그랬었다. 누구나 악한 마음은 다 품고 산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사람을 향한 질투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집착, 뺏고 뺏기지 않으며 내 것을 챙기려는 이기심과 같이 온갖 어둡고 축축한 마음은 무의식 속 맨 아래 잘 숨겨두고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러나 무의식은 깊지만 툭하면 까발려져서 누가 내 무의식을 훔쳐보고 숨기려던 것들을 알아버릴까 무섭다. 나는 언제나 정직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무의식에 대한 두려움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중 하나는 종교적 신념과 관련된 것이었다. 특정 종교를 이단 취급하며 비난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 당시 나는 모든 종교적 믿음을 혐오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조금씩 다른 형태의 사이비고, 실제가 아닌 이야기를 세뇌시켜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은근하지만 깊게 새긴 것이 아닌가 하는 맹랑한 결론도 내려볼까 시도했다. 그때의 내가 손목에 염주를 차고 부처의 말씀이 담긴 책을 가방에 지니고 다니는 지금의 나를 본다면 정신 나간 비합리주의자라고 혀를 찰 것이다. 지금은 그런 맹랑한 생각은 절대 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의 마음에 신이 존재하고 있다 하는 범종교주의자로 살고 있다.
또 다른 두려움의 대상 중 하나는 조현병이었는데, 내가 의식하고 있는 이곳이 사실은 무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면 어쩌지 따위의 걱정이었다. 이 걱정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류의 걱정들이 오히려 내 정신을 분열시키는 것 같아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현실에 발 단단히 붙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싶어서 그만뒀다.
무의식이 자꾸만 배를 까고 드러눕는다는 것을 알기에 요즘에는 깨달은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고 들으며 어둡고 습한 나의 무의식을 환기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음지의 곰팡이는 순식간에 피어 번지기 때문에 정말 자주 그래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