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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Oct 06. 2017

일기43_안경

선명했던 시절이여, 안녕





나도 참 평범하다 못해 뻔한 아이였던지라 어렸을때는 안경을 쓰고싶어 안달을 냈었다. 시력이 나빠지길 바라며 해를 향해 눈을 부릅뜨기도 하고 도수가 있는 오빠의 안경을 몰래 쓰고 돌아다니는 쓸데없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스무살때 받은 검사에서 나는 양쪽 모두 2.0이상의 시력이 나왔다. 조상중에 몽골사람이 있는게 아닌지 생각될 정도로 행운이었고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눈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매년 받는 검사 수치는 0.4씩 떨어지고 예전보다 선명도가 확실히 떨어지는것을 체감하기도 한다. 눈이 건조하다 못해 시리다거나 안압이 높아져 터질것 같은 느낌도 왕왕 받는다.


직업상 커다란 모니터를 사용하는데다 선명하게 보아야 하기때문에 화면밝기도 거의 최대로 설정해서 썼었다. 디테일한 부분을 볼 때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모니터를 노려볼때도 많고 집중할때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몇시간을 앉아있는 패턴속에 눈의 피로가 쌓인것 같다. 뒤늦게나마 루테인도 먹어보고 생각날때마다 인공누액을 넣어보지만 가뭄에 콩나듯 하니 효과도 없다. 안과에 가서 불편함을 호소하자, 이제 안경밖에는 방법이 없단다.





그렇게 또 한동안 그러려니 하며 지내다 최근 보안경 개념으로 일할때만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불편함이지만 억지로 적응중이다. 도수가 있는 것으로는 처음이기 때문에 새로맞춘 안경을 쓰고 이리저리 돌아보다 갑자기 멀미가 나서 혼이 나기도 했다. 이제는 화장을 곱게하고 출근해도 자리에 앉아 안경을 쓰면 헛짓거리가 된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는 내 시력의 소중함을 간과했었다. 돌아가지 못할 선명했던 2.0의 과거. 마치 소싯적 무용담처럼 되새길 뿐이다.


눈이 나빠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그렇게 잘 보이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싶다. 이런날이 올 줄 알았다면 나는 조금 더 관리를 했을까?





아, 옛날이여.

선명했던 시절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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