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계절을 타지 않았다
나의 가을은
여름만큼 힘이 넘쳤고
겨울은 그 어떤 봄만큼이나
싱그러웠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아쉬움보다
당장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던
어린날의 에너지는
계절을 가리지 않았다
이번 계절은
다시 오지 않음이
유난히도 아쉽게 흘러간다
뻔한 슬픔이지만
뻔하게 아프지는 않다
지금을 아쉬워하고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다
그렇게 점점 뒤처져
두 눈에 과거만을 담는 것은
나에게는 두렵고 슬픈 일이다
매년 지나는 가을이 반복된다 하여
똑같거나 뻔하지 않듯이
우리 모두가 가게 될 길이지만
각자에게는 뻔하지 않은
두려움이자 슬픔일 것이다
이번 가을의 낙엽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