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II23_친절한 남자, K

외국 남자 사람 친구

by 일랑



*관계II 부터는 이전 발행된 글과 이니셜이 겹치나 동일인물이 아니니 다소 혼란스러우셔도 양해 바랍니다.






나의 십 대와 이십 대를 함께한 가장 가까운 (불쌍한) 친구들은 대부분 내 성질을 받아주느라 고생을 참 많이 했다.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니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미안함에 타자를 치는 내 표정이 어색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감정적이고 흥분을 잘 하는 내 옆에서 K가 가장 많이 하던 말은 "Calm down(진정해)"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말은 나를 더 타오르게 하는 번개탄 내지는 휘발유 같은 효과를 가져왔지만 말이다. (급격하게 흥분하는 만큼 빨리 소진되니 K가 고도의 전략을 쓴 걸 지도 모른다.)


K는 덩치에 비해
순하고 자상한 성격으로
늘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친구였다


주변이 하나같이 썸 한줄기 타지 않는 여자 사람 친구들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 살 많은 그를 장난삼아 간간히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태국인인 그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그 호칭을 들을 때마다 손을 내저으며 싫다고 했다. 아마도 나는 그렇게 그를 놀리는 재미로 낯선 타지에서의 무료한 일 년을 버틴 듯하다. 어느 순간부터, 그 시절 사진 속에 나는 늘 K와 함께였다.


그는 태국으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몇 해가 지나고 어느덧 사회생활에 익숙해졌던 어느 날 과거 페이스북 피드를 들추어 보다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한결같이 짓궂고 천진난만한 표정의 K가 달걀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이상한 구조물을 들고 서 있다. 떨어뜨리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카메라 뒤에서 "좋아, 어서해" 따위의 추임새를 넣는다. 그의 손을 떠나 바닥과 닿은 달걀은 마치 땅속으로 꺼질 듯 바스러지는 소리를 내며 보기 좋게 박살 나고 곧이어 엉망으로 흔들리는 영상 속에 그와 내가 깔깔대는 소리가 가득했다. 이런 영상을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제같이 생생한 느낌이 생경하여 몇 번을 되돌려 보았다. 당시 이미 20대 중후반이던 우리가 티 없는 아이들처럼 웃고 또 웃는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몰려오는 그리움에 급체를 한 것 같았다. 그때의 K와 그때의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공부하던 그 낯선 도시에서 보낸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이 그리워졌다. 타인을 향한 넘치는 애정을 가진 그가, 그 옆에 늘 내어놓던 곁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내가 겨울의 추위에
진저리를 치는 반면
K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유럽에서 함께 맞은 첫겨울에 우리는 졸업을 했다. 졸업식에는 그의 아버지와 막냇동생이 참석했는데, 아버지는 이번에 평생 처음 눈을 보시는 거라고 내 귀에 속삭이며 키득거렸다. 각자 원래 돌아온 곳으로 떠날 시간이 목전에 다다랐을 무렵 그는 겨울 부츠와 코트를 여러 개 구입해서 돌아가는 짐에 꾸렸다. 이유를 물으니 "태국은 겨울이 없어서 이런 것들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겨울이 없으니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내 말에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겨울 나라로 여행 갈 때 필요하단다. 하지만 내 생각에 아마도 K는 그저 그 해 겨울을 추억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방콕으로 돌아가면 다시없을 추운 겨울의 12월을.


나는 5년 후 뜨거운 12월의 방콕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 5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K가 서울로 여행을 온 적도 있고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방콕에서 휴가를 보낸 적도 있으니 5년 만의 극적인 재회까지는 아니었다. 늦은 밤 여섯 명의 동료들을 대동하고 태국 공항에 나타난 나를 데리러 나와준 K는 돌아오는 날 아침 일찍 다시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러 나왔다. 게이트로 들어가는 나를 붙잡고 많이 아쉬워하는 K의 면전에 대고 "내가 방콕에 다시 올 일 없으니 네가 서울에 오지 않는 한 이게 마지막일 거"라며 가감 없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있지도 않을 미래 따위 기약하며 다시 보자는 말을 하는 대신 내 방식대로 내보이는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2년 전 공항에서의 그 이별이 지금까지 우리의 마지막이다.


K에게 나는 어떤 친구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한 번은 K가 장난스럽게 자신 같은 남자는 어떠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우리 사이의 기분 좋은 발란스가 무너질까 봐 덜컥 겁이나 "너무 착해서 싫다"고 내질렀다. 그런데, 자기가 모든 사람에게 착한 것은 아니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바보 같지만 그제야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자로서 이든 친구로서 이든 그 관계의 정의를 떠나 그에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무한하게 자상한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껏 K의 친절을 분에 넘치게 받아놓고도 과소평가 해온 내가 한심했다. 문득, 소중하게 대해준 그 마음이 고마워졌다. K가 내어준 마음의 크기를 그저 당연하게만 생각한 것 같아 미안했다. 당시에 알았으면 다 소화해내지도 못했을 그 큰 마음을 품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K를 알게 되어 감사한다. 아마도 이런 간지러운 이야기를 그에게 직접 해 줄 날은 절대 올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나는 니스로, K는 그라스로 향했던 여행 중 함께했던 저녁
졸업 뒷풀이, 사진에는 잘렸지만 그의 오른쪽에 있는게 나


요즘에도 K는 마치 자신이 방콕 홍보대사라도 되는 냥 그곳을 방문하는 친구들을 공항에서 맞아주기도 하고 가이드를 해주기도 한다. 친구들을 향한 그의 끝없는 호의는 계산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보여주지 못할 조건 없는 애정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친구가 된 덕분에 나도 아직까지 그의 애정 어린 관심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가 아닌 사람들에게 보이는 K의 모습들은 아마도 볼 기회가 없을듯 하다.


더위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동남아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12월에 겪은 이글대는 방콕은 일부러 다시 찾지 않을 도시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이나 방콕에 관한 내용이 방송에 나오면 온 정신을 쏟는 나다.


K가 있을 그 곳이,
그가 보낼 오늘 하루가
어제와 같이 평화롭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