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시절을 겪고 있을
*관계 II부터는 이전 발행된 글과 이니셜이 겹치나 동일인물이 아니니 다소 혼란스러우셔도 양해 바랍니다.
내 평생 첫 직장 후배 Y야
늦은 나이에 후배라고 받아보니 오히려 어렵기만 한 게 선배노릇이더라. 한 마디 해주자니 꼰대가 되는 것 같고, 그저 보듬기만 하자니 도움 안될 것 같고. 술 못 마시는 이 선배는 힘들 때 술 한잔 사줄 줄도 모르니 가끔 네가 이렇게 힘들어할 땐 어떻게 해줘야 할지 고민된단다.
내 위로도 선배가 줄줄이니 회사생활이 이런 거다 함부로 정의 내려 주기도 주제넘은 일이야. 그래서 내가 신입일 때 한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신입은 그저 출근시간 되면 회사 오는 것만 잘 하면 돼." 너에게 떨어진 일의 크기와 무게에 너무 부담 가지지 말라는 뜻이야. (그만큼 근태가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고. 다른 선배들이 지각할 때마다 네가 배울까 늘 조마조마하단다.) 물론 회사는 Y에게 정시출근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하겠지만 네가 일이 버거워 나가떨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을 거야. 체하지 않게 소화할 수 있는 만큼 꼭꼭 씹어 삼키렴.
지금 회사 선배들은 막장드라마나 회사 괴담과는 거리가 먼 그저 편하고 든든한 사람들이라는 거 Y도 알 거야. 그 안에서 네가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끼길 바라. 그러니 호되게 당한걸 우리에게 하소연하듯 얘기할 때 자꾸 울컥하게 되겠지. 하지만 Y야, 우는 것도 참아 버릇해야 해. 그만큼 힘든 마음이 넘쳐서 밀고 나오는 게 눈물이라는 거 잘 알아. 하지만 나는 '사무실에서 우는 날이 곧 사표 쓰는 날'이라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녀.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는 의지이기도 하고 더 단단한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해. 이미 흘린 눈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버거운 상황에 뒤돌아서 다 털어낼 수 있는 모습으로 성장했으면 해. 특히 회사에서는 다른 사람이 네 마음에 상처 입게 두어선 안돼. (차라리 뒤돌아 나와서 푸짐하게 욕을 해버려.) 앞으로도 네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건 너 자신뿐이라는 걸 계속 되새김질해야 해.
Y가 내 평생 첫 후배이지만
평생 내 후배이지는 않을 거야
우리는 같은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는 한없이 얕은 공동체이니까. 세상에 있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만큼 앞으로 다양한 선배들도 만나게 되겠지. 제일 배우기 쉬운 게 좋아하는 선배의 나쁜 점인 것 같아. 좋아하는 선배의 좋은 점을 배우는 건 그만큼 더 많은 의지가 필요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배우다 보면 어느덧 Y의 후배가 배우고 싶어 하는 선배가 되어 있을 거야. 물론 이건 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반성.
처음 사회에 나와서 1년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되돌아보아도 간사한 인간의 기억인지라 벌써 희미해져 있네. Y한테도 그럴 거야. 이 모든 난관이 희미해지고 몸 안에 사리로 남아 언젠가 네가 어떤 자리로든 옮겨가 도전할 수 있는 멧집 센 디자이너가 되기를. (그때는 마치 둥지를 떠나겠다고 선언하는 아기새를 보는 심정일 거야.) 그 용기로 지금의 자리에서도 씩씩하게 헤쳐나가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지금 바다라고 생각하는 이 곳은 웅덩이일 뿐이야. 더 큰 바다로 나가면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것들을 수도 없이 만나겠지만 그만큼 웅덩이에서는 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도 끝없이 할 수 있단다. 그러니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주저하지 말기를 바라. 그전까지는 이 웅덩이에서 열심히 헤엄쳐보자.
언젠가 멀리 날아갈
너를 상상하니
벌써 마음이 먹먹하다
네가 오늘 겪는 실패와 성공, 꿈 그리고 포기는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할 네 몫으로 차근차근 쌓일 거야. 그렇게 각자의 몫을 하나씩 주워 담으며 빈 바구니를 채워가다 보면 지금 허덕이는 이 일도 지루하리만큼 익숙해지는 날이 오더라. 지금 한참 어여쁜 시절을 지나고있는 네가 언젠가 나는 그리워질거야. 내가 그랬듯, 아니 너는 나보다, 그 시절을 찬란했다 기억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