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해진 삶을 느끼며
꽃을 배우는 동안에는 주변에 꽃이 가득하다는 것이 좋았다면, 캘리그래피는 배우는 당시보다 배우고 난 후 그 진가를 발휘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지루할 틈 없고 평소 별생각 없이 쓰던 단어도 곱씹어 쓰며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되는 등 일상적인 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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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도구의 부피가 작으니 언제 어디서든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점, 같은 말도 조금 더 특별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 조금의 노력으로 세상 하나뿐인 선물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있다. 아무리 좋아도 여러 번 읽는 것뿐이던 글귀나 노래 가사도 캘리그래피를 통해 더 깊이 눌러 새기는 느낌이 든다. 악필인 사람들은 필체가 보정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악필인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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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하는 몇 주간의 수업을 통해 기본기를 배웠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후로는 온전히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다. 수업을 몇십 회씩 지루하게 이어가기보다는 어느 정도 배우고 난 후 한동안 혼자서 연습하다가 다시 수업을 들어 그간 생긴 나쁜 습관과 지저분해진 글씨를 재정비하는 것도 방법이나. 그저 불변의 진리가 있다면, 많이 써봐야 좋아진다는 것이다.
처음인데도 유난히 잘할 수 있는 스타일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나는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보다 약간 싸늘하고 서글픈 느낌의 글씨를 잘 쓰더라) 못하는 스타일을 마스터하는 데는 확실히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문구점에서는 펜 욕심을 부리게 된다. 욕심대로 집어 오면 몇만 원씩은 쉽게 쓰게 되니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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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말에 팀원들에게, 떠나가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여행지에서, 각각 직접 쓴 엽서를 선물했다. 구구절절 쓰지 않아도 몇 단어만으로 내 마음을 전달하기에 이만한 게 또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참 잘 배워뒀다 싶다.
토요일 오후,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사람들이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주말마다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배우고 싶은 이유는 가지각색이었고 가르쳐 주고자 하는 열정은 대구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게 했다. 지난가을 연남동에서의 시간이 이후 내 삶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준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