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1_J에 대하여

찬란했던 시절을 대변하는 너의 이름

by 일랑



친구에 대해서 쓸 일이 있다면
나는 J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쓸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녀는 내 찬란했던 대학시절
그 자체이니까


J와 나는 대학 4년 내내 정말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여느 친구들이 그렇듯, 그녀와 나도 많이 달랐다. 나에 비해 그녀는 자존감이 낮았고 외로움을 많이 탔다. 멋모르던 대학시절 마치 모든 것에 답을 가지고 있는 냥 콧대 높았던 나를 그녀는 강아지처럼 의지하고 따라다녔다.


J와 나는 나라와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많은 공감을 했다. 나는 그녀의 고민에 깊이 이입했고, 그녀는 내 조언에 진심으로 귀 기울였다. 그녀는 관계에 있어 특히 무른 사람이어서 나쁜 남자 친구나 계산적인 친구가 붙기도 했다. 자주 나에게 관계에 대한 상담을 했고 나는 그녀를 아낀 만큼 많이 나무라기도 했다. 못되게 말하는 나에게 서운함을 표현하기는커녕 솔직하게 생각을 말해줘서 고맙다고 하던 녀석. 너는 왜 그렇게 착하기만 하고 관계에 있어 언제나 을이었을까.


함께 자주 가던 학교 앞 딤섬집에서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나는 그녀와 함께한 도시를 떠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매정한 처사였다. 뭐든 혼자 잘 하는 나는 선택의 순간에도 그녀에게 상의하지 않았고 나를 많이 의지하던 그녀는 큰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거라고 잘난 체 한걸 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내가 사는 도시로 J가 놀러 오기도 하고 함께 그녀의 고향을 여행하기도 했지만 그 마저도 이제는 오랜 과거가 되고 말았다.


함께했던 도시를 떠난 후 서로 주고받던 이메일들은 마치 어제도 만난 것처럼 장난기 가득해서 나는 이걸 모아 책을 내자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아마도 J는 약한 소리를 하면 내가 다그칠까 봐 아무렇지 않음으로 위장한 외로움 가득한 메일을 썼을 수도 있겠다.


미안하게도
나 역시 어렸기 때문에
그때 J의 상실감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졸업 후 J는 무난한 성격처럼 무난한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함께 디자인을 공부했기 때문에 자신과 달리 전공 관련 일을 하는 나를 부러워하곤 했다. 일의 무난함에서 느끼는 회의감을 자주 토로했지만 그녀가 하고 싶어 했던 일은 불안정한 수입이 따랐기 때문에 늘 고민까지만 했었다.


몇 년 전 그녀는 대학 졸업 무렵 만나던 남자 친구와 결혼을 했다. 그는 나와 J의 또 다른 친구인 T의 오빠였다. 친했던 T의 집안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결혼을 망설였고 나도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할머니가 위독하셨고 돌아가시기 전 손녀의 결혼을 간절히 바라셨기 때문에 그녀는 이번에도 타인을 위한 선택을 했다. 나도 그녀의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후에도 종종 내 얘기를 하셨다고 한다. 그녀의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J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해왔다. 분명 예견된 이별이었지만 그녀는 깊이 슬퍼했고 이번에도 나는 함께 해주지 못했다. 본래 위로에 소질이 없는 나는, 아프지 않은 곳에서 편안하실 거라는 겉핥기 식 위로를 메신저로 건넬 뿐이었다.


지금은 자신을 닮은 아기의 엄마로 적응하며 살고 있으니 이제는 거꾸로 내가 조언을 구해야 할 만큼 어른이 된 J. 그렇게 인생의 큰 일들을 겪어내면서도 내 생일이며 크리스마스 때면 생각이 나던지 연락이 오곤 했다. 잘 지내냐며, 오늘따라 그립다며. (아기를 키우는 요즘 그마저도 뚝 끊겼지만) 간간히 올라오는 그녀의 아들 사진에 한 번은 울컥 내 진심이 튀어나왔다. N의 이리도 예쁜 시절을 함께하지 못해서 서운하다고. 그러자 J가 말했다.


N도 너를
참 좋아할 거야


그려졌다. J를 닮은 눈이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나를 바라봐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조만간 N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소한 엄마를 닮아 작고 여리게 태어난 N은 내가 보낸, 조금은 큰 옷을 입을 수 있게 열심히 자랐다. 이제는 그마저도 작아서 못 입을 테지만 말이다.


내 시선이 머물렀던 J의 앳된 뒷모습

세상에서 나를 J만큼 절대적인 애정으로 바라봐줄 친구는 다시없을 거라는 것을 나는 안다. J는 세상이 모두 나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막아설 단순한 녀석이니까. 대신 나는, 앞으로 살아갈 평생 동안 천천히 조금씩 멀리서 그녀를 아껴줄 생각이다. 그녀가 읽지 못할 이 글에서 그녀를 추억하듯이.


나의 찬란했던 시간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