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제야 남는 아쉬움
Y와 나는 같은 대학의 다른 과 학생이었다. 둘 다 부모님과 떨어져 타지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생일이 비슷해서 서로의 생일 중간쯤과 크리스마스에 만나 집 앞의 자주 가는 버블티 가게에서 단골 메뉴를 마시며 수다를 떨곤 했다. Y는 나보다 언니였다. (두 살 위인지 세 살 위인지는 늘 헷갈린다) Y가 말하는 내 첫인상은 활발하고 거침없는 아이였다. 당시 나는 학생회 임원이었는데, 회원 모집을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던 참에 다른 친구와 함께 있던 Y를 만난 거라는 사정이 있었다. 곧 학생회는 그만두었지만 Y와의 친분은 이어졌다.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Y와의 관계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녀와 만날 때는 다른 친구를 끼지 않고 오롯이 둘이서 만났다. 사진에 찍히는 것을 즐기지 않는 취향도 같아서 대학교 2학년부터 시작된 인연임에도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남아있지 않다. 그만큼 우리의 성향은 비슷했고, 고집스러웠으며 일관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후회가 된다. 같이는 아니더라도 찍어둘 것을. 어떤 가게에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으로 Y가 내 앞에 앉아 있었는지. 그날 창밖의 날씨와 가게의 전경과 버블티가 담겨 나오던 잔이라도 사진으로나마 기억할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카메라 렌즈가 그녀를 향할 때 심히 불편해했겠지만, 조금 억지를 부려서라도 찍어두었다면 바로 지금 꺼내보았을 것이다.
Y는 늘 내 취향을 흥미로워했다. 그녀의 눈을 통해 바라본 나는 개성 있는 존재였고, 특별해진 느낌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게 좋았다. 하지만 실상 독특하기로는 Y의 취향을 따라갈 수 없었다. 금속 공예를 했던 그녀의 정신세계를 반영한 작품들을 보면 나는 언제나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반지에는 어떤 형체가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있기도 했고 브로치에는 집 같은 형태가 붙어 있기도 했다. 이다음에 Y본인의 결혼을 위해 만들 반지가 기대된다며 같이 웃곤 했다.
Y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고집스러움이 있었다. 좋고 싫음이 확실했고 옮고 그름의 기준도 명확했다. 나와는 비슷한 가치관이 많아서 마음먹고 앉으면 반나절 수다는 기본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는 각자 부모님이 있는 도시로 돌아갔기 때문에 한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가 내가 사는 곳으로 오게 되면서 몇 달에 한 번씩은 볼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둘 다 술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를 다닐 때처럼 종종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대화는 예전 같지 않았다. Y는 힘들어하고 있었고 나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로는 언니였지만, 건강도 그렇고, 정서적인 면도 그렇고 신경 써줘야 할 것 같은 대상이었다. 몇 해가 지나 그녀는 다시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몸이 약한 Y에게는 여러모로 그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뒤에 남은 나는 한동안 허전해했다.
더 이상 같은 학교를 다니지도
같은 곳에 살지도
공감할 이야기도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Y가 사는 도시로 여행을 가게 된 것은, 그녀가 '한번 놀러와'라고 얘기한 지 몇 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다른 친구와의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하루 점심을 잠깐 함께 보냈다. 그녀는 결혼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내가 아는 Y는 예민한 편이기 때문에 결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도 많이 야위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더 이상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Y는 기대했던 엄청난 컨셉의 결혼반지를 제작하지 않고, 그저 무난하게 예쁜 반지를 낀 채 성당에서 점잖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랬던 그녀가 최근 임신을 했다 한다. 그녀의 성격상 지금은 태어날 아기에 온 정신을 쏟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아기가 태어나면 내가 가지 않는 이상 다시 얼굴 보기는 힘들것이다.
Y와 나 사이에는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화가 오갔다. 덕분에 내 기억 속 그녀는 그 누구보다 뚜렷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에게 그녀와의 친분을 증명해야 하지 않는 이상 사진이 무어 대수랴.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남길 것을 그랬다. 다른 친구들을 찍어 둔 것처럼 뒷모습이라도, 하다못해 역광 속의 실루엣이라도 찍어둘 것을 하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에 와서야
그게 사무치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