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누나라고 부르던 꼬마 아이
가능한 한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와 G의 아버지는 회사 선후배였다. G의 어머니는 나를 아명으로 부르셨고, 나보다 세 살이 어렸던 G는 통통한 볼살이 귀엽던 아주 작은 남자아이였다. 한 번은 내가 수두로 크게 앓았던 적이 있는데, 고열에 시달리다 눈을 떴을 때 G의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계셨다. 나에게는 그만큼 가까운 또 다른 어머니였다. 딸이 없었던 아주머니는 나 스스로도 느낄정도로 나를 많이 예뻐해 주셨다. 시간이 흘러, 각자 다른 도시로의 이사로 가끔 연락은 하지만 자주 보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 간간히 어머니들의 통화로 근황 정도만 들을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나는 혼자 하는 여행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걱정이 되셨던 아버지는 안전하다 생각하신 G의 부모님이 사시는 LA 여행을 권하셨고 G의 부모님들도 환영해 주셨다. 산디아고에서 학교를 다니던 G가 시간을 내서 내 여행을 도우러 와 주었다. 차 없이는 다니기 힘든 도시이다 보니 G의 부모님이 소환하신 건데, 어릴 때 기억하는 G의 모습이 다였던 나로서는 꼬마 같던 아이가 운전하는 차에 앉아 감회가 새로운 시간이었다.
G와 함께하는 내내
그의 차 안에는
김동률의 노래가 흘렀다
덕분에 걸어서는 못 볼 풍경과 야경이 예쁜 관광지까지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최초로 혼자 했던 여행이자 이후로도 언제든 혼자 떠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혼자 여행을 할 때마다 이 모든 것의 시초가 된 그 여행이 떠오른다.
G의 어머니는 매년 우리 어머니 생신에 맞추어 카드와 선물을 보내신다. 심지어 우리 가족이 잊는 한이 있어도 아주머니는 며칠 전에 도착할 수 있도록 챙기신다. 선물도 보통 선물이 아니라 손수 만드신 퀼트 같은 것들이다. 이를 순도 백 프로의 애정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G의 집은 손재주가 많으신 아주머니의 영향으로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했다. 여행이 끝나고 나는 LA에서 찍은 사진을 인화하여 G의 부모님께 보내드렸는데, 집안 구석구석을 찍은 사진이 많았던걸 보면 아마도 아주 인상 깊었나 보다. G는 그런 어머니를 닮아 자상한 사람으로 자랐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SNS에 많은 사진을 올리는데, G는 그중 유난히 내 여행사진을 좋아한다. 구태여 묻지 않아도 그가 여행을 좋아하는 걸 알 수 있다. 연결된 SNS를 통해 그가 산티아고를 여행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미국에서 자라 자립심이 강한 씩씩한 그와 잘 어울리는 여행지였다. 사진 속 그는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눈만은 생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지난겨울, 오랜만에 G가 한국에 왔을 때 산티아고 여행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깨달음은 얻었어?
하고 물으니 그저 웃는다
부모님은 그가 이제 다 커서 말이 다 통한다며 신기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볼살 귀엽던 꼬마는 이제 산만한 덩치의 서른 살 성인이 되었다. 동생이 없는 나에게 누나라고 부르는 건 세상에서 G가 거의 유일하다. 그래서 나에게 더 남다른 것일 수도 있겠다. 녀석이 '누나'하고 부르면 내 앞에 있던 듬직한 남자는 사라지고 다시 그 옛날 꼬마가 웃으며 서있다.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건네던 뽀얗고 작은 남자아이가 말이다.
세상은 앞으로도 호락호락하지 않겠지만 나는 G가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어디로 향하는지, 언제쯤 도달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만으로도 축하하고 싶다. 그 누구의 기준도 아닌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그만큼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분명 찾게 될 것이라 믿는다. 찾아서, 그 값진 행복을 누릴 자격이 그에게는 있다고 믿는다. 조금 이기적인 생각을 보태어, 세상이 조금 더 그 아이 위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너를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