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10_회사 밖의 배움, Z

후천적, 노력형 선후배 관계

by 일랑




스물여덟의 나는
따르고 싶은 선배가 없는 상황을
손 놓고 포기하기보다는
찾아 나서는 쪽을 선택했다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당시 소속된 조직에서 할 수 없게 되자, 나는 업계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 중 하나가 Z였다. 젊고 패기 있다 봤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맹랑할 수도 있었던 내 이야기를 Z는 끝까지 들어주었고, 곧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과연 내가 주장하는 그 일을 해낼 능력이 나에게 있는지, 그리고 정말 잘 해낼 수 있는지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부터가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한 단어로 정립된 특정 전문직이 아닌 리서치와 기획력으로 전략을 짜는 분야였던 터라 이런 포지션을 가진 기업 자체가 드물었고, 그렇다 보니 회사에는 딱히 물어볼 선배도 없었다. 그때 마침 사내 교육 중 외부강사로 참석한 Z의 일이 가장 근접해 보였고 강의중 공유된 메일 주소로 연락하기에 이른 것이다. Z 또한 없는 포지션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며 거기까지 간 상황이었다.


변화하는 시장에서
그녀와 나의 케이스 또한
같을 수 없었다


Z는 먼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업계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개념을 잡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 스스로를 그 일의 전문가로 어필하는 법을 알려주고자 했고 이를 위해 주기적으로 그동안 내가 한 일을 정리한 것을 가지고 그녀를 만나 일종의 트레이닝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Z를 만날 때는 늘 면접 보는 것 마냥 긴장되었다. 사회초년생의 허튼소리 정도는 단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20년 차 사회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회사에서 관련 업무의 리서치가 필요한 아르바이트를 주기도 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 이것 또한 어느 정도의 테스트였다.


Z는 내가 목표로 하는 회사 출신이었고 다방면에서 나를 준비시키고 있었다. 원하는 부서의 임원(그녀의 선배이자 나에게는 까마득한 인물)과도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채용에 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갔으나 당장 구체화되지는 않았고, TO가 생길 때까지 대기하는 심정으로 꾸준히 Z와의 만남도 이어갔다. 그녀는 나와 만나는 자리에 다른 사람을 초대해 함께 보기도 했다. 그녀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흥미로웠다. 나처럼 가고 싶은 자리로의 이동을 원하는 또래들도 있었고 내가 일하던 업종의 한참 선배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2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맹목적으로 이직만을 목표로 낭비하던 시간보다는 생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준비할 때쯤
Z가 함께 일해보자 제안해왔다


그녀와 함께 일하게 된다면 처음 내가 하고 싶었던 기획을 할 수 있었고 지금 회사로 오게 되면 실무를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후자를 택했다. 어린 나이였던 만큼 실무역량을 먼저 다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2년 동안 나를 지켜본 업계의 선배가 함께 일하자 제안해준 자체가 나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 일이었다.


최근 한동안은 Z에게 연락하지 못해 죄스러운 마음이다. 그녀는 사회에 나오자마자 이상과 다른 현실에 무기력해진 나의 정신에 경종을 울리는 과외 프로젝트 같은 존재였다. 혹자는 그녀가 젊은 인력을 쉽게 부리는 게 아니냐고도 했지만, 중요한 건 내가 원한 것이고 뭔가 배웠다는 것이니 그 또한 상관없다. 내가 조언을 구하고자 무작정 찾아간 사람은 사실 Z뿐만이 아니다. 그중에는 성의 없는 답변을 준 사람도 있고 딱 신랄한 평가까지만 해준 사람도 있다. 하여 나는 Z가 보여준 게 (어느 정도) 순수한 호의라는 것을 안다. 회사도 학교도 같지 않은, 혼란에 빠진 어떤 햇병아리가 다가와 조언을 구할 때 나라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저 대견하여 돕고 싶을까, 가소롭고 맹랑하기만 할까.


회사가 만들어준 선후배의 틀에 갇혀
불만을 가지는데서 끝나기보다는, 넓은 사회를 보길 바란다
좋은 선배 또한 쟁취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