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세 가지 전시 이야기
전시회에 가는 것은 나에게 취미가 아니라 업에 가깝지만 즐기는 부분이니 취미라고 우겨보련다. 요 근래 루이뷔통과 샤넬이 연이어 (심지어 무료) 전시를 열어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하게 된 기념으로 간단한 후기를 남긴다.
내가 바라본 최근 전시 트렌드는 대략 이렇다. 일단 연령층이 무척이나 낮아졌다. 그만큼 문턱도 낮아졌다. SNS 피드용 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공간이 포토제닉 하게 연출되어 있고 촬영을 저지하기는커녕 독려한다. 전시 사진들을 실시간으로 업로드하는 관람객들 덕에 SNS는 쉬지 않고 새로운 피드로 채워진다.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세포가 빠르게 분열하듯 생동감 있게 콘텐츠가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시 내용도 많이 어려졌다. 난해하기보다는 직설적이고 진지하기보다는 위트 있어야 젊은 층의 지지를 받는다. 전시장의 모든 구석과 벽면에는 각자의 인생 샷을 건지려는 사람들로 빈틈을 찾기 힘들 정도다. 그리고 그 안에 스토리와 브랜드 메시지를 소통하려는 기획자의 노력이 녹아있다.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2017.06.28-08.27
재작년 이맘때쯤 디올의 전시(Esprit Dior)가 있었던 DDP 공간에서 루이비통의 전시가 열렸다. 전시관이 큰 편이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힘들겠지만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늘 만족하는 곳이다. 루이비통이 여행용 가방으로 알려지게 된 역사와 고객의 니즈에 맞추어 제작했던 트렁크들이 초반부에 전시되어 있다. 모든 가방이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주문한 고객의 삶과 성격을 반영한다. 고객의 주문은 루이비통에게 늘 도전이었고 이를 통해 브랜드가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Volez, voguez, voyagez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비행기 모형과 선박의 갑판, 기차의 내부를 재현한 높은 퀄리티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국에 헌정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이 코너는 사실 엄청 대단한 구성은 아니지만 한국 고객들에게 조금 더 다가오려는 브랜드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오방색을 기반으로 한국의 혼례함이나 김연아 선수를 위한 스케이트 케이스 등 루이비통의 시선에서 재해석된 한국을 보여준다. 마지막 공간에는 프랑스 가죽 후가공 전문가들이 실제로 앉아서 작업하고 있다. 작업 모습을 화면으로 가까이 볼 수 있으며 소통할 수 있게 통역(아마도 불어가 가능한 루이뷔통 직원)이 함께 서 있어서 질문도 가능하다. 장인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루이뷔통 다운 마무리라고 할 수 있겠다.
Mademoiselle Prive 서울
2017.06.23-07.19
살갗이 타는듯한 날씨에 찾은 한남동 디뮤지엄. 도착하자마자 전시관 앞에 줄을 세우는데 그늘 한 점 없는 곳에 단 몇 분 서 있는 것만 해도 고역이었다. 디뮤지엄은 DDP에 비해 협소한 공간 때문에 좀 재미있으려 하면 끝나버리는 느낌이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곳 중에 하나다. 내부에는 샤넬의 대표 향수 'Number 5'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칼 라거펠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 등, 줄을 서서 관람해야 하는 코너들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겹겹이 걸린 패브릭에 시야가 차단된 좁은 길을 따라가며 심플한 실루엣으로 보이는 영상이었다. 제한된 공간에서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와 그림자 영상에 온몸의 감각이 집중되어 다른 차원의 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온 듯하다. 이 곳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높은 천장을 이용한 대형 설치물이 있다. 여러 개의 인물사진(샤넬하우스와 작업한 모델들)들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길을 막기도, 열기도 하는데 아주 협소한 곳에서 영상을 보고 나와 마주하는 대형 설치물에서 오는 극적인 공간감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전시의 마무리는 샤넬 하우스 친구들의 인물 폴라로이드. GD의 사진 앞에서 사진을 남기려면 좀 치열할 수 있으니 각오가 필요하다.
WE ARE THE ADER WORLD
2017.05.13-07.16
샤넬 전시가 생각보다 순식간에 끝나 아쉬운 마음에 걸어서 5분 거리의 구슬모아 당구장에 들렀다. 요즘 핫한 크리에이터 그룹인 ADER의 전시가 진행 중인 곳이다. 홍대에 있는 아더에러 또한 판매를 위한 리테일 공간이라기보다는 전시관 같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대놓고 전시를 하면 어떨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들어서자마자 자신감 있게 곳곳에 사용된 블루를 통해, 이것이 그들의 시그니처 컬러임을 알 수 있다. 공간은 생활 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들을 그들만의 위트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는데, 예를 들면 볼풀이라던가 쓰레기통 안의 생활용품들이라던가 좌우가 반전된 네온사인이라던가 (반대편의 반사 표면으로 보면 정상적으로 읽힌다) 하는 것들이다. 크리에이터 그룹 ADER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소통의 창구로 나쁘지 않은 경험일 듯하다. 전시를 보고 나서 ADER의 이후 행보가 궁금해지기도 하는 걸 보니 이 정도면 성공적인 전시가 아닐까? 마음 맞는 창의적 브레인들이 모여하는 예술적 활동을 응원한다면, 샤넬 전시를 가는 길에 꼭 한번 들러보길 바란다.
젠틀몬스터도 그렇고, 아더에러도 그렇고, 또 같은 맥락에서 대림창고도 그렇지만, 요즘은 세련된 리테일 공간과 대중적인 전시 공간의 간극이 좁혀져 그 경계가 많이 흐릿해졌다. 덕분에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전시 관람'이라는 활동 자체가 삶과 더 가까워져 반가운 마음이다. 다만 SNS에서 내 삶의 다채로움을 뽐내는 전시용 인생 샷을 찍느라 민폐에 가깝게 하는 행동들만 자제된다면, 하고 바라본다. 딱 봐도 주객이 전도된 것이 분명한 상황이 마냥 좋아 보이진 않으니까. (나, 꼰대인 건가)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 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