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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주Ivy Jun 23. 2022

매끼가 기아구제였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걸음

"조금만 더 운동하면 나중에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어. 500kcal 만 더 소모하자."-


'주인님 저 쉬어야 해요, 이러다 죽겠어요! 벌써 3시간이 지났다구요!'-


"무슨 소리야! 고지가 저 앞이야, 정한 운동을 다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나중에 제대로 보상해줘야 해요!'-


"당연하지! 스쿼트 50개만 더 하면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알겠어요, 간에 있는 지방에게 SOS를 요청해볼게요.'-


3,2,1, 땡. 1800kcal라는 숫자를 확인하자 비로소 살았다는 듯이 휴 하고 마음을 놓았다.

폭식증으로 자기 자책을 막고자 고안한 방법이 있다. 여성 하루 칼로리 평균 섭취 권장량인 1800kcal 태우는 운동을 한 후에는 마음 놓고 먹어도 괜찮겠구나라는 논리였다. 

1800kcal 소모를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뇌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로 받아들였다. 오로지 미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또 했다.

매끼가 기아구제였다.

약 이천 칼로리를 한 번에 연달아 태우면 몸은 죽을 고비에 처했다고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몸속의 장기, 호르몬들은 만약의 위험에 대비해 생존 모드로 전환된다.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 전두엽은 눈앞에 보이는 어떤 음식이든 섭취하라고 명령한다. 굶주린 맹수처럼 사냥감을 입 속으로 넣기 바쁘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먹을 음식과 디저트를 미리 준비해 놓는다. 

4시간가량 고강도 운동 후 맛보는 자극적인 음식과 단 디저트는 환상적이다. 혀 속에 있는 모든 미각 세포 (미뢰)에 번개가 내리꽂는 극강의 짜릿함을 준다. 온몸에 전율이 퍼져 '미쳤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망망대해를 한 달 이상 표류하다가 구조되어 맛보는 음식 맛이 이와 비슷할까라는 이상한 상상을 하며 음식에 취한다.

준비해 놓은 음식과 디저트를 순식간에 해치운다. 만족을 못한 뇌는 더 많은 디저트를 갈구한다. '1800kcal를 소모했으니 더 먹어도 돼'라며 보상 중추가 속삭인다. 이미 이성을 잃은 뇌는 보상 중추의 속삭임에 근처 마트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상상황을 대비해 식량을 비축하는 사람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디저트가 계산대 위에 놓인다.


'1800kcal를 소모했으니 괜찮아 더 먹어도 돼.'


'내일 더 많이 운동하면 돼.'


몸과 뇌는 적당히라는 단어를 아예 잊어버렸다. 적당히가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도가 알맞고 바르게 먹는다는 것'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분 좋을 만큼 먹는 것인가? 배에 포만감이 찰 때까지 먹는 것인가? 아니면 좋은 음식만으로 배를 채운다는 것인가?  

짜릿함과 쾌감이 자기 통제력을 잃었다는 실망과 함께 짜증과 분노로 바뀌었다. 디저트에 대한 나의 태도는 180 도 변했다. '내가 다시는 디저트를 먹나 봐라.' 라며 집에 있는 모든 디저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먹기 위해 내 안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는 혼자만의 사투가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랐다. 이 사실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고 도움받고 싶지도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예쁘고 돈 많은 사람이 아닌 적당히 먹고 만족하는 일상을 사는 사람.


집에서 고립된 삶을 벗어나 사람과 소통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만난 친구 한 명이 있다. 저녁 약속 전, 여느 때와 똑같이 3시간의 고강도 운동 후 약속 장소에 갔다. 일반 레스토랑의 음식 양으로는 만족 못할 것 같아 무제한 초밥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친구 앞이니까 의지력이 발동하겠지, 적어도 자기 통제를 잃지 않겠지라는 마음은 큰 오산이었다.

형형색색의 초밥들이 눈앞에 펼쳐지자 정신없이 흡입하기 바빴다. 친구가 어떤 말을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다양한 초밥과 롤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소통을 하려고 만났던 친구는 안중에도 없고 혼자 생존하기 바빴다. '이 친구와 관계는 끝이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연락을 끊을 줄 알았지만 다음 약속을 내게 물었다. 기쁨, 미안함, 안도감의 복잡한 감정들이 동시에 교차했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얘기도 많이 하고 질문도 많이 해야지!' 라며 수백 번 다짐했다. 이번엔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뷔페가 아닌 일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남을 가졌다. 1800kcal를 태우지 않으면 불안해서 먹지 못했기에 여느 때와 똑같이 고강도 운동을 하고 만났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먹기 바쁜 나와 달리 맛을 음미하고 꼭꼭 씹어먹는 친구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메인 요리를 다 먹은 후 디저트가 나왔다.

몇 입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지금이 딱 좋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놀란 나는 물었다.


"디저트 더 먹고 싶지 않아?"-


"지금이 딱 좋아. 적당히 배부르고 너무 만족해."-친구


"그런 느낌이 어떤 느낌이야?"-


"음.. 배가 불러서 불편하지도 않고 배가 고파서 예민하지 않은 딱 좋은 상태."- 친구


평소 원했던 것이기에 그 친구가 신기하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지 배우고 싶어 나도 모르게 비밀을 고백했다.


"사실 내게 먹는 것에 문제가 있어."-


"문제? 어떤 문제인지 말해줄 수 있어?'- 친구


"다른 사람에게 처음 얘기하는 건데 말하기 걱정되고 두려워."-


"괜찮아, 어떤 얘기든 받아들일 준비되어있어. 억지로 말 안 해도 돼, 네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해줘."- 친구


그 순간에도 나는 친구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에 얘기할지 말지를 수 없이 고민했다.

눈동자를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한 표정을 한 나와 달리 온화한 미소로 지긋이 보고 있는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복잡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싱긋 웃음을 내게 건넸다.


'그래, 지긋지긋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음식에 속박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잖아. 얘기해보자!'


음식과 매일 전쟁을 치르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했다. 서툰 영어였지만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암덩어리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음식 앞에서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상대와 얘기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식사가 단순히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 소중한 사람과 소통하는 그 자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의 식사에 대한 태도는 간단해, 몸의 신호에 따르는 거야. 얼마큼 먹는지, 하루에 얼마큼 운동을 해야 하는지 정해놓지 않아. 가끔 몸이 아플 수도 있고, 스트레스로 인해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잖아. 그럴 때는 충분히 휴식을 가져줘야 해. 그래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

자신을 존중하는 첫 단계는 몸의 신호를 듣는 거라고 생각해.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바로 응답해주는 거야.

날씨에 따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때가 있고 기분에 따라 바삭한 감자칩을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 신호를 그냥 넘어가지 말고 바로 응답해주면 기분 좋을 만큼만 적당히 먹고 그만 먹을 수 있어.

뇌는 언제든지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다 먹어야 한다는 악마의 속삭임을 하지 않는 거야.

하지 마라고 하면 더 하고 싶듯 뇌도 '절대 먹지 마'라고 정해 놓으면 더 먹고 싶은 게 아닐까?

단조로운 일상에 디저트는 기분을 즐겁게 만드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팝콘 없는 영화관, 마시멜로 없는 캠핑, 케이크 없는 파티는 상상도 하기 싫어. - 친구


"적당히 기분 좋게 먹는 방법을 잊어버렸어.. 내 의지로 통제가 되지 않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음... 나는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오랫동안 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어. 우연히 어두운 곳에서 휴대폰 빛의 노출이 잦아질 때 눈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영상을 본 후로는 자연스레 멈추게 됐어.

네가 영양학 공부를 하고 디저트 폭식의 원인을 깨우친다면 스스로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의외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버릇의 원인을 모르고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몰라서 생각 없이 계속하는 경우가 많거든. 

항상 '왜?'라는 질문을 가지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면 답이 보이지 않을까?"-친구


순간 친구에게서 자유라는 글자가 보였다. 디저트에 집착하는 이유를 내게 묻지 않았다. 그저 의지력이 약하다고 자기 비난만 했다. 낯선 땅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단 음식을 찾는 줄만 알았다. 나를 속박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매일 숨이 찼다. 자신이 만든 규율에 갇혀 보이지 않는 쇠창살에 살고 있다.


나는 왜 디저트에 집착할까?

디저트를 한 번에 많이 먹고 싶은 욕구가 왜 생기지?


중학교 시절의 내가 보인다. 좋아했던 선생님의 "너 왜 이렇게 살쪘어?"라는 한마디에 상처를 받아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마르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더 예뻐해 주고 좋아해 주겠지라는 마음에 식욕을 참고 또 참았다. 이때가 시발점이었다. 학업 스트레스와 함께 고등학교 때 폭식증은 찾아왔고 위가 허락하는 이상 계속 먹었다. 

두 번째 계기는 대학교 시절 "너는 뱃살이 너무 많아서 기아 몸 같아."라는 전 남자 친구의 말 한마디로 극강의 다이어트가 시작됐다. 아픈 말들을 내뱉은 그 사람들에게 용기 있게 되받아치지 못했다. 그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 오히려 나를 질책했다. 

아팠던 감정들은 마음 한편에 얽히고설켜 버려졌다. 감정 응어리들은 낯선 곳에서의 불안함과 마주하니 암덩어리로 변해 나를 괴롭혔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뇌는 본능적으로 단 음식을 찾았지만 먹는 동시에 죄책감이 들었다. 지옥 같은 악의 순환고리에 갇혀 생존하려고 애를 썼다.


"네가 토론토에 계속 있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컬리지에 입학해서 제대로 영양학 공부를 해 보는 것이 어때?"- 친구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전개였다. 컬리지에서 영양학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저 깊은 무의식 속에서 꿈틀거렸다. 실제로 행동의 원인을 알게 되면 자연히 디저트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새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날 밤 아빠에게 카톡을 했다.



"In the midst of winter, I found there was, within me, an invincible summer. And that makes me happy. For it says that no matter how hard the world pushes against me, within me, there's something stronger ㅡ something better, pushing right bak."


"깊은 겨울 속에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무적의 여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이 얼마나 거칠게 나를 짓누르든지 간에, 내 안에는 곧바로 받아치는, 더 강하고 더 선한 무언가가 있다."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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