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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주Ivy Jul 31. 2022

한밤중의 통화

카톡이 나를 도왔다

따다란 따 따다~ 따다란 따 따다~

경쾌한 보이스톡 멜로디가 긴장된 마음을 잠시 잊게 한다.

밤 낮이 바뀐 한국과 토론토에서의 전화 통화는 자주 어긋난다.

'전화받지 마라'라고 속으로 외치던 중 "어 큰딸" 아빠 목소리가 들린다.

주무시다가 일어난 목소리다. 가라앉은 목소리에 힘을 주고 싶었다. "아빠~ 잘 지냈어?" 활기차게 애교작전을 펼친다. 용건 없으면 전화를 잘하지 않아 속으로 찔렸나 보다.

유학생 신분으로 대학 학비가 만만치 않아 마음이 불편했다. 조리 있는 말로 설득하려고 미리 A4용지에 적어 만만의 준비를 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전화하는 것 같아 죄송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세 달치 안부들이 수화기 너머로 오고 갔다. 

폭식증 고치려고 영양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해야 할지 캐나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해 경험도 쌓아보고 싶다고 열정 있는 척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오늘도 장녀로서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척쟁이가 된다.


"토론토 생활은 어때?" - 아빠


"뭐 괜찮아..." - 나 


"돈 더 필요하지 않아?"- 아빠


"괜찮아, 필요하면 말할게."-나


"다른 힘든 점 없어?"- 아빠


"응 없어..." - 나

 

거짓말.. 항상 그랬듯이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준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두 가지 이유

1. 겁이 많으셔서 걱정만 많은 엄마

2. 내 선택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자신감을 요구하는 아빠


두 분의 반응이 이미 예상돼 불편한 상황에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 그저 '응원하다'는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거야, 혼자 감당하자.' 늘 진실을 숨겼다.


이번에는 달랐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도 모르겠고 앞으로 헤쳐나갈 일이 막막해요, 도와주세요.' 한 문장이 목구멍 밖으로 거의 비집고 나왔다.


내 마음을 알리가 없는 아빠는 

"우리 딸 장하네, 낯선 땅에서 돈도 벌고, 다른 사람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은 잘 돼?"

영어 읽기 듣기보다 상대적으로 말하기에 약한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며 돈 버는 것이 신기했는지, 딸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었는지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칭찬을 듣는데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못된 말을 삼키느라 애 먹었다.

'대학은 비록 실망시켰지만 취업은 엄마 아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스펙 쌓으려고 캐나다 왔는데 뇌가 고장 났는지 디저트와 매일 싸우고 있어. 칭찬받을 자격 없어 그만해.'


비밀을 삼키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불효녀는 안돼'라고 자기 합리화하며 미리 써 놓은 거짓 대본을 읽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전화로 얘기해 다행이라 생각하며 연기를 펼쳤다.

학비가 만만치 않아 설득하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교육에 아낌없이 지원해주셨기 때문에 공부에 열망을 보이면 도와주실 거라 믿었다.


"토론토에서 대학 졸업한 후 취직해서 성공할 수 있겠어?" - 아빠


가슴이 막혔다.

10대부터 성공해야 한다는 무게에 짓눌려 답답했다.

성공이 무엇인지 얘기해 주지 않으면서 사회가 만든 성공 공식에 늘 끌려다녔다. 

좋은 대학 가서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대기업 입사를 위한 스펙 쌓기에 열의를 다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성공이란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인가? 성공하면 행복해지는가?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성공인가? 둘 다 해당되어야 하는가?


세상에 던지는 이런 질문들에 학교는 답을 주지 않는다. 수많은 전문가가 난무하는 유튜브에 물어보는 것이 답 찾는 지름길처럼 보인다. 무수한 정보들 속에서 좋아요 조회수를 위한 거짓 정보에 낚여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성공 공식에 순응한다.

 

'잘돼서 보여줘야 돼'라는 돌덩이와 10대부터 함께 자랐다.

불안을 먹고 자란 돌덩이는 어느새 바위만큼 커졌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바위 무게에 짓눌려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점수 맞춰서 대학교에 갔고, 스펙 쌓기 열풍에 휩쓸려 인턴, 해외봉사, 교환학생 등 기회가 주어지면 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돈부터 따졌다. 마지막 이력서 한 줄을 위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택했다. 

폭식증을 겪을 거라는 변수는 생각지 못한 채 영어를 끝장내겠다는 다짐 하나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맏이 잘하면 밑에 동생들도 잘한다는 큰딸 콤플렉스가 늘 따라다녔고 사회가 요구하는 잘난 딸의 규격에 못 미치는 나는 부족함을 느꼈다. 대학에 실망한 부모님께 죄송했고 패배감이 무의식 깊은 곳에 나도 모르게 차지하고 있었다. 취업만큼은 엄마 아빠의 자랑이 되고 싶었다.


이력서를 장식해 줄 토론토 생활은 엉망이 되어갔다.

빌어먹을 폭식증부터 고쳐야 했다.

성공의 압박과 낯선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폭식증이라는 괴물을 낳았을까?


"응 할 수 있어."- 나 


" 한 두 푼도 아니고 잘 생각해보고 결정한 거야? 너도 다시 생각해보고 아빠도 생각 좀 할게 다시 통화하자."- 아빠 


확실한 답을 듣지 못한 채 통화를 끝냈다.

'아빠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한국 가서 폭식증 치료받아야 하나.. 취업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영어 점수 만들어서 한국 가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 없네..'


꼬리를 물고 상상이 이어질수록 두려움이 심장을 내리쳤다. 심장 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져 머리까지 쿵쾅거렸다.

도망치고 싶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누텔라와 식빵이 손을 흔든다. 1초의 망설임 없이 집어서 방으로 갔다. 먹방을 보며 극강의 달콤함에 취한다. 꾸덕한 식감이 목구멍을 지나갈 때 짜릿함에 중독된다. 반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늘만 먹자, 내일도 먹으면 사람이 아니다.' 나와의 타협이 시작된다.

내일부터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한 통을 다 먹어야겠다 생각이 든다. '이틀 굶자'라고 타협하고 정신없이 흡입했다. 

토론토 대학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이거 다 먹으면 뭐 먹지?'  

아빠와 통화 전, 걱정도 됐었지만 기대도 했었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볼 거라는 희망에 전날 운동도 했고 건강하게 먹었다. 노력했던 것이 물거품 됐다고 느끼자 통제력을 잃었다.

토할 힘도 없었다. 불뚝하게 튀어나온 배를 만지작 거리며 체념했다.


걷잡을 수 없는 짜증이 불쑥 튀어나왔다. 펜을 들고 빈종이에 분풀이했다. 낙서로 시작된 빈종이에 욕으로 채워졌고 부정적 감정이 가득한 문장이 빼곡했다. 악에 찬 글자들은 하얀 종이 위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아 종이를 찢었다. 뿌욱 소리와 함께 분에 차 날뛰던 글자들이 힘 없이 주저앉았다. 

터질 것 같은 머리도 내려앉아 책상과 맞닿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냥 적었다. 배우고 싶은 것에 관심을 돌리면 상대적으로 음식 생각이 덜할 것 같았다. 


'생각한 것을 행동하는 게 힘이다'를 믿어왔던 내게 영양학 공부가 막막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줄 구원의 길처럼 보였다. 당장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더 간절해졌다.

아빠를 어떻게든 설득시켜야 했다.

할 수 없다고 외치는 내면의 그림자에 할 수 있다는 힘을 불어넣어 자신감으로 무장해야 했다. 

한글 파일을 열어 2차전을 준비했다. 


따다란 따 따다~ 따다란 따 따다~

이번엔 엄마다.


"어 엄마~ 퇴근했어?"

"응 큰딸~ 아빠한테 얘기 들었어."

"응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먼 땅에서 해낼 수 있겠어? 엄마는 걱정된다. 한국 와서 취업 준비하는 게 낫지 않아? 지금까지 취업 준비해놓은 것도 있고"

걱정이 많은 엄마의 반응을 예상했고 절대 화 안 내야지 수없이 다짐했지만 못된 말들이 기어코 목구멍 밖으로 뛰쳐나갔다.


"엄마는 왜 맨날 걱정만 해? 그냥 응원해줄 수 없어? 해보지도 않았는데 될지 안 될지 어떻게 알아?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해봐야 다음 단계가 보이지, 안 해보고 걱정만 하면 뭐가 해결돼?"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한 나는 유독 엄마한테는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이기적인 딸이 된다. 


"엄마가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지 왜 화를 내고 그래 딸~." - 나

"아 몰라, 나중에 아빠랑 통화할게, 안녕." - 엄마

상처 주는 말들이 더 올라오기 전에 차단했다.


'카톡' 울림과 함께 큰딸 사랑해 파이팅! 하트 메시지가 보였다.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젖은 베개를 안고 구부린 채 잠이 들었다. '카톡' 소리에 눈을 떴다.


'먼 타지에서 씩씩한 큰 딸이 자랑스럽고 대견해. 많은 고민을 하고 내렸을 결정이라 믿고 꿈을 위해서 열심히 해봐, 학비는 얼마큼 드는지 아빠가 한국에서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지 구체적으로 적어서 카톡으로 보내 놓고 또 통화하자, 사랑하는 딸 항상 응원한다.' 


아빠다운 메시지였다.


'고마워 열심히 해서 꿈을 이룰게 하트'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메시지로 보내는 마음이 아빠의 심정과 같았을까.

카톡이 없었으면 이런 중대한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을까? 새삼 카톡이 고마웠다.


어떤 말을 해도 사랑해줄 거라는 명분 하에 상처 주는 말을 생각 없이 내뱉는 딸

자식을 향한 부모의 절대적인 사랑은 '응원한다' 한마디로 끝낼 수 없기에

오늘도 역시 나의 말과 그대의 걱정이 충돌해 만들어질 갈등을 피하려고 솔직하지 못했다.


진실에서 멀어지면 어때,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는 게 어때서, 언제는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나? 지구 상 어딘가에 내편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는 그대에게 '나중에 꼭 잘돼서 효도해야지.' 뻔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오늘도 그냥 넘어간다.


"Our only limitations are those we set up in our own minds."

"우리에게 있는 한계란 우리가 스스로 정해 놓은 한계밖에 없다."


-Napoleon Hill (나폴레온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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