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닿는 그 자리
그가 사라졌다.
토요일 아침,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얼굴은 잠과 깨어남의 경계에 머물러 있다. 두 번의 멈춤 끝에, 앉은 도서관 종합자료실 끝자리.
햇빛이 가장 먼저 스미는 창가의 책상에서, 내 주말은 잔잔하게 숨을 고르며 시작된다.
지난봄, 내 앞 건너편 책상에 은빛 머리칼의 한 남자가 나타났다.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쓰거나, 가끔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그 시선 너머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고요가 내 자리까지 번져와 마음을 잠재웠다.
옥상 쉼터에서 한 번 마주쳤다.
햇볕이 이마에 부서지고, 바람이 머리칼을 흩날렸다.
“도서관에서 자주 뵙네요.”
그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방송대 영문학 공부하시더군요.”
그게 전부였다.
그 후로는 멀리서 눈인사만, 가끔씩.
그러나 다섯 달 동안 그는 늘 거기에 있었다.
책을 읽는 손등의 힘줄, 펜을 드는 순간의 멈춤,
페이지가 넘어가는 바스락 거림까지
내 토요일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2주 전부터, 빈자리.
사람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일주일의 한 조각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는 괜히 그 자리를 흘끔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문득, 엉뚱한 상상이 스친다.
혹시 그는 집 책상에서 일기를 쓰다, 나를 한 줄쯤 적었을까.
‘매주 토요일, 앞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남자’라고.
아니면, 그의 기억 속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의 시선 속에서 나는, 나조차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다시 올까.
모른다.
하지만 그 빈자리가 내게 남긴 건 분명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름도 관계도 없이
그저 ‘존재’만으로도 생겨나는 감정이 있다는 것.
그날 이후, 도서관을 나설 때
나는 창문 속 내 뒷모습을 한 번 더 본다.
언젠가, 그에게도 이런 뒷모습이 있었을까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