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1코스
오늘은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나섰다.
가벼운 운동화 신고 배낭도 없이, 마음 하나만 들고, 숲이 부른다기보다, 그냥 그 길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도시의 소음은 등 뒤로 밀려나고, 발바닥에 닿는 흙의 감촉이 내 생각보다 더 선명하다.
맨발로 걷는다는 건, 단순히 신발을 벗는 일이 아니었다. 말없이 나를 품는 땅의 감촉, 그건 조용한 위로였다.
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내 안의 작은 소리를 들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일도, 답답하던 감정도 천천히 가라앉는다.
나는 가끔 이 길에서 울컥한다.
별일 아닌 것에도 마음이 벅차오르고, 아무도 없는데도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말하지 않아도 온전한 공간.
이곳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나고, 그 만남이 어색하지 않다는 게 놀랍다.
숲은 말이 없다. 그래서 더 깊다.
그 고요는 내가 말을 잃게 만드는 게 아니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일깨운다. 낮은 숨소리, 나뭇잎 스치는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새 한 마리의 울음. 그 사소한 것들이 모여, 내 마음을 다독인다.
나는 오늘도 내 걸음의 소리를 들었다.
그건 어느 책에서 본 문장보다, 어느 위로보다 더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