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이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by 미카엘


시험장 벽에 붙은 안내문 앞에 잠시 섰다.


입실 시간과 시험 시간,

지켜야 할 규칙들이 단정하게 적혀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괜히 한 번 더 읽었다.

그 앞에 서 있는 내가 그냥 좋아서,


나는 학위를 두 번 마쳤다.

올해 방송대 편입한다고 했을 때

아내는 이제 공부는 좀 그만해도 되지 않냐고,

이미 충분히 하지 않았느냐고,

좀 편하게 살자고, 그리 살아도 된다고.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나도 안다.

젊은 날의 공부가 생존과 증명이었다면, 지금의 공부는 '유희'이자 '자존'임을 알게 된다.

나는 정년이 없는 직업에 여전히 현직으로 있지만,

예전처럼 치열하게 살지는 않는다.

충분히 숨을 고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부는 다르게 다가온다.

나은 미래를 위함도 아니고,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배운다는 감각과 시간이 좋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

그 과정이

의외로 나를 활력 있게 만든다.


시험장 안에는

각기 다른 나이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태블릿을 놓고 자신의 과목 시험 문제 앞에 앉아 있다.

그 순간만큼은

누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인생 경험이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지금,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움에는

나이가 정말 핑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

남는 건

지금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그 질문 하나뿐이라는 걸.


나는 이 공부를 끝낸 뒤에도

또 다른 배움을 찾을 것이다.

그때는 반드시 학교일 필요는 없다.

형식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무언가를 계속 배우고 있는 상태로

앞으로도 살아가고 싶다.

그게 나를

조금 더 느긋하게,

조금 더 나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삶이란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서,


배움이 마르기 전에 또 다음 책장을 넘길 것이다.

난, 지금의 내가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넌 재미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