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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새눈 Nov 08. 2024

요즘 네가 왜 이렇게 좋지?

영혼에 상처를 남기고 사랑으로 아물게 하여 각인을 새겨 넣는 존재, 부부



그는 그녀의 양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으며 말한다.

"요즘 네가 왜 이렇게 좋지?"



이 말이 로맨스 드라마의 대사라면 아마도 이런 장면일 것이다. 젊은 남녀, 야경이 아름다운 한강 공원을 걷고 있다. 가로등이 분위기 있게 빛을 밝히는 벤치 앞에서 남자가 말한다. 여기 잠깐 앉았다 갈까? 두 사람은 약간 서먹해하며 벤치에 나란히 앉는다. 남자가 뜸을 들이다 말한다. 있잖아, 나 요즘 네가 왜 이렇게 좋지? 마음을 콩닥거리게 만드는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여자가 토끼눈을 하고서 묻는다. 뭐?.. 볼이 빨갛게 물든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다. 남자가 다시 말한다. 그러니까.. 요즘 네가 너무 신경 쓰여, 네가 너무.... 좋.다.고.  두 사람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번갈아가며 화면에 담긴다. 그 순간 바람이 불고 여자의 머리카락이 넘실거리며 여자의 얼굴을 스친다. 여자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넘겨주던 남자가 여자의 볼을 손바닥으로 감싼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에서 별을 발견한다. 두 사람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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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 말은 사실 드라마의 달달한 무드와는 결이 사뭇 다른 상황에서 쓰였다. 어느 주말 오전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꾀죄죄한 모습의 내 앞으로 편이 지나가다 멈춰 서서 말했다. 뭐 이렇게 생겼냐?ㅋㅋㅋ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지는ㅋㅋㅋ 거울이나 봐. ㅋㅋ 그러자 남편이 내 양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즘 네가 왜 이렇게 좋지?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살짝 설레긴 했지만 거기엔 의아함 한 스푼과 불안함 한 스푼도 녹아있었다. (뭐지? 무슨 꿍꿍이지?) 나는 애써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어리광을 부리듯, 그래? 하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내 볼을 꼬집고 달아나며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작년부터 올해까지 가끔 꼴 보기 싫을 만큼 미울 때도 있었는데 이상하네. ㅋㅋㅋ


나는 남편을 잡기 위해 앉은 자세로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채로 잠옷 자락을 휘날리며 황급히 멀어지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 ㅂ - ㅎㅎㅎㅎ






우리는 어느 초여름날 우연히 밤하늘에 별똥별처럼 나타나 서로의 마음에 강물처럼 흘러들었다. 낮에는 손을 붙잡고 이 거리 저 거리를 걸으며 서로의 반짝이는 세상 눈 속에 담고, 밤에는 목소리를 붙잡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 속을 더듬으며 서로의 무른 영혼을 마음으로 껴안았다. 그는 지친 하루의 끄트머리에서, 지난 불행의 잔재 속에서, 비애로 멍울진 나의 가슴을 품어 안아주는 한없이 넓고 깊으며 짙은 바다가 되어 주었다. 그는 파도처럼 스르륵 스르륵 내 등을 토닥여주며 함께 행복해지자고 말했다. 우리는 만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인생을 함께 살아갈 약속을 했고, 2년이 되기 전에 사람들 앞에서 혼인을 맹세했다.


지난했던 준비과정을 거쳐 결혼식이라는 의례를 통과한 이후, 우리는 약속을 정하고 만나 특별하게 여겨지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한 집에 머물며 특별한 순간들뿐만 아니라 매 순간을 함께 하며 서로에게 일상이 되어갔다. 사랑과 낭만으로 충만하던 날들에 구체적인 생활과 생계의 흔적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때때로 싸웠고 화해를 했다.






최근 1년 동안에는 온종일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특히 자주 싸웠다.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사소한 이유로 우리는 부지런히 싸웠다. 때로는 말투나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싸웠고, 때로는 배가 고픈 예민한 상태에서 민감한 주제의 얘기를 잘 못 꺼내서 싸웠고, 때로는 서로의 말이나 행동에 괜한 의미를 부여해서 감정이 상해 싸웠고, 때로는 수챗구멍의 머리카락 때문에, 때로는 티비 속 아이돌 때문에 싸웠다. 제일 처음에는 사랑을 맹세한 이 사람이 나를 몰아세우며 화를 냈다는 사실 그 자체에 큰 충격을 받아 후유증이 꽤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싸우고 나서 화해를 하고 나면 언제, 무엇 때문에,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싸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로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제각기 살아온 몇 십 년의 시간을 맞대어 다른 부분들을 대면하고 재단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잘 맞는 줄 알았던 입맛도, 비슷하다고 여겼던 취향도, 같은 줄 알았던 가치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달랐다. 입맛을 예로 들자면 우리는 돈까스를 좋아해서 돈까스를 자주 먹으러 다녔는데, 알고 보니 나는 얇고 바삭하게 튀겨진 경양식 돈까스파, 남편은 도톰하게 튀겨진 돈까스가 얼큰하고 칼칼한 국물과 어우러진 돈까스김치나베파 였다는 식이랄까. 그런 식으로 다른 부분들을 파고들다 보면 우리의 공통점들은 더 이상 '비슷하다' 또는 '같다'는 표현으로 묶어둘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부류로 나뉘었고, 미묘하고 사소했던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결코 융합될 수 없고 용인될 수 없는 거대한 격벽처럼 벌어져 서로를 벼랑 끝으로 밀어냈다. 그 차이를 좁히려고 하다 보면 기어코 싸움이 났다.


우리는 서로를 다 안다고 여겼고 그 모습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제멋대로 상상한 이상적인 모습을 상대에게 덧씌워 그 모습을 사랑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모습도 이 사람의 일부분이긴 했지만, 다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계속해서 새롭게 알아가는 일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 사람의 모습이 나의 성급한 판단으로 인한 오해였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되는 일은, 또 이 사람과 꾸려갈 거라고 예상했던 미래의 청사진 또한 나의 일방적이고 불완전한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좀, 꽤, 가혹했다.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서로를 향해 날 선 말들을 뱉은 후 방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혼자 시간을 보낼 때면,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버려 고독하고 비참한 심정이 되었다. 결혼 전 나에게 갈등과 싸움이라는 건 관계의 종결을 의미했다. 살면서 가장 가까이서 목격했던 싸움이 서로를 갉아먹고 괴롭히고 파괴하는 종류의 것이었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마는 결말을 맞이해 버렸으니까. 나는 대체 무얼 믿고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결심을 했나, 나도 모르게 아빠와 닮은 사람을 골라버린 아닌가,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을 너무 섣부르게 해 버린 건가, 하고 나의 선택을 검열하다 보면 끝없는 절망 속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서워서 엉엉 울기도 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실체를 확인하고, 또 상대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처한 현실을 마주하고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상대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는 타격감은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 만큼 치명적인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상대가 미안해, 라고 말하며 내민 손을 맞잡는 순간 끈끈하게 녹아내려 상대와 나를 한 땀 더 엮어주는 실 같은 구실을 했다. 상처가 난 자리에 진득한 애증의 연고를 발라가며 싸움을 거듭할수록 우리는 서로의 상처에 엉겨 붙어 더욱더 한 몸처럼 접착되어 갔고, 그렇게 조금씩 더 결속이 되어가는 채로 싸움을 반복하며 결국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며, 싸움의 목적은 서로를 이해하고 더 나은 결말로 나아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우리는 싸우면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 직시했고, 서로에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딘지 가늠하고 타협했으며, 서로가 가진 결핍이 무엇인지 파악했고, 어떤 성장환경에서 어떤 습성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했으며, 그래서 서로가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무엇에 어떻게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남편에 대해 알게 된 만큼 남편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남편을 헤아리다 보면 남편의 상처가 나도 아프고, 남편의 고통에 나도 괴로워졌다. 그러다 보면 남편의 마음이 내 마음같이 가깝게 여겨지고, 그러다 보면 남편이 가엾고 안쓰럽고 애틋해졌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지금은 서로의 다른 부분이 서로를 보완해 주어 더 좋다고 여긴다. 내가 닭가슴살을 좋아하고 남편이 닭다리를 좋아해서 치킨 한 마리를 만족스럽게 나눠 먹을 수 있듯이,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수긍한다. 남편은 내가 못 보는 부분들을 봐주고, 내가 못 먹는 것들을 먹어주고, 내가 어려워하는 것들을 해주고,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나 또한 그렇다. 우리는 우리로서 점점 더 완전하게 기능하도록 진화하는 중이다. 우리는 변신합체 로봇처럼 약한 부분에 서로의 살을 덧대어 융합한 한 덩어리의 거대하고 강한 결합체가 되어간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과 약한 부분을 안다는 것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일임을 이해하고 난 뒤로, 우리는 서로의 연약한 알맹이를 드러내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우리는 건강한 공격성을 가지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와 갈등상황을 함께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방법을 터득했고, 선택적으로 모든 것을 굳이 함께하지 않음으로써 평화를 쟁취하는 요령을 획득했다. 싸울 때의 규칙과 최소한의 배려도 마련해 두었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잘 싸우자고 결의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싸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더 넓게 바라보고 문제에서 핵심을 짚어내는데 능숙해지겠지만, 여전히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며 서로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먼 훗날 손을 꼭 맞잡은 채 햇살이 아름다운 거리를 걷고 있을, 꼭 닮은 얼굴로 늙어있을 두 사람의 모습을 알고 있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서로에게 몸을 의지한 채 걷고 있을, 두 사람의 주름진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를 알고 있다. 거창하진 않아도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갈 우리 두 사람의 시간들과 쌓아갈 추억들, 우주에 단 하나뿐인 이 생명체와의 깊고 애틋한 교류가 참 소중하다.






돌이켜보면 서로에 대해 정말 조금밖에 알지 못한 채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결혼 5년 차를 살아내며 이제와 결혼이란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사람을 끝없이 알아갈 각오,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마음으로 이 사람을 받아들일 각오, 이 사람과 싸우면서 살아갈 각오, 이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 각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을 믿고 사랑할 각오,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비롯한 내 모든 생을 이 사람과 함께 살아나갈 각오. 


부부란 서로의 영혼에 상처를 남기고 사랑으로 아물게 하여 각인을 새겨 넣는 존재들이 아닐까.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건 각인이 새겨지는 고통을 정표삼아 사랑을 감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결혼식에서 함께 낭독했던 혼인서약서를 결연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읽어본다.




나는 언제나 진실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아내를/남편을 기뻐하고

아내/남편의 곁에서 누구보다 아내를/남편을 사랑하고 아끼는 남편이/아내가 되겠습니다.     

  

나는 늘 다정한 마음으로 아내를 웃게 하는 남편/남편에게 더없이 좋은 벗 이 되겠습니다.     


아내를 따뜻이 보듬어주고 아내의 어떤 말에도 귀 기울이며

어떤 순간에도 아내에게 무한한 믿음과 배려를 보낼 수 있는 남편이 되겠습니다.     

/남편을 든든하게 지지하고 남편의 어떤 말에도 귀 기울이며

어떤 순간에도 남편에게 무한한 감사와 믿음을 보낼 수 있는 아내가 되겠습니다.


오늘의 행복이 당신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하며,

나날이 깊어가는 마음으로 평생 존중하고 사랑할 것을 서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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