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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주 Sep 07. 2021

남편의 편이 되어주는 아내.

-- 그럼 내 편은?????

" 그러니까.. 내가 가을 타는 것 같아."


그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남편이 스스로에게 내린 결론이다. 


그렇지. 입추가 지나면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마음으로 들어왔겠지. 시원하면서 뭔가 허전했겠지. 계절이 바뀌는 중이니까 신체적 변화도 있을 것이고.... 다 이해할 수 있는데....


' 왜 우리 땡큐한테 화내는 거야?'


땡큐는 만 3세 어린이이고 우리 집에서 제일 어린 사람이다. 아직은 행동을 멈춰야 할 때를 모르고 우기고 조르고 징징 거리는 나이이다.


아이는 발달 상 어쩔 수 없는 것뿐인데, 남편도 그 시기를 지나 성장한 사람인데, 첫 애를 키우며 경험해 본 남편인데, 자신의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를 깔고 아이에게 화를 냈다.


같이 일이 반복되면 화가 날 수 있다. 그런데 화내는 횟수가 잦고 강도가 셌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어느 날 주말 저녁, 나는 자기 전 남편에게 넌지시 말했다.


" 땡큐 때문에 화가 나는 건 아닐 거야. 분명, 남편의 마음속에 뭔가 있는 것 같으니 이유를 잘 찾아봐."


와~ 이 말을 하고 스스로 뿌듯했다. 남편을 타이르는 아내라니! 나 자신이 멋지게 느껴졌다. 이렇게 두 번 정도 타이르고 남편 스스로 감정을 추스리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다음 주말, 남편은 바뀐 것 없이 땡큐에게 또 큰소리를 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약한 아이가 가장 힘이 센 상대에게 공격을 당하니 마음이 찢어졌다. 두 번이나 타일렀는데 먹히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이대로 두면 안될 것 같아서 지인들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지인들은 일 때문에,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가정을 지켜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수많은 지인의 이야기 중, 남편의 상태를 완화시킬 수 있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남편의 편이 되어주세요."



' 와! 그럼 내 편은? 우리 땡큐는? 우리 축복이는?' 하는 반발심이 들었다. 남편 때문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엉망진창 되었는데 그런 사람의 편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은 1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을 향한 감정이 꽤 나빠진 상태였다. 충고 한다고 한 번 더 말을 꺼내면 감정싸움이 될 것 같았다. 싸움까지 가면 한 동안 냉랭하게 지낸다는 걸 경험상 알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더 참고 남편의 편이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땡큐는 아빠가 해줄 때까지 부탁한다. 하다 하다 안되면 징징 소리를 낸다. 그래서 땡큐가 징징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섰다.


"땡큐야. 네가 징징하면 아빠가 들어주기 힘들어. 아빠한테 그만해. 엄마한테 와서 얘기해봐. 엄마가 해줄 수 있어." 


이 말을 했을 뿐인데, 분위기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남편은 땡큐를 바라보며 '알았어'라고 대답한 후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남편이 힘들 만한 상황에 남편이 느낄만한 감정을 말해주니 남편의 마음이 수그러졌다. 이건가? 이게 남편의 편이 되어주는 건가? 이런 걸 바랐던 건가? 




그날 육퇴 후, 조언을 들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었고 그래서 감사하였으며 더불어 남편의 편이 되어주지 않고 나만 너무 신나게 지내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그동안 나는 진짜 잘 지냈다. 질질 끌고 있던 전자책을 투고했고, 원격과 방학기간에 살림 쉽게 하는 법을 터득하며 아이들과 잘 지냈다. 


개학 후 두 아이는 학교와 유치원에  별 탈 없이 잘 다니고, 그동안 나는 운동하고 지인 만나고 글 쓰고 책 읽고 좋아하는 일 실컷 했다.


그런데 그 안에 우리 남편을 넣지 않았다. 우린 주로 카톡으로 대화하는 부부인데, 그동안 혼자 신나게 지내느라 남편에게 안부 카톡을 안 했던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일에 남편의 감정이 어두워지다니... 날 아직 사랑하는 건가?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건가? 서로의 마음이 남아 있어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남편의 가을은 끝났다. 내일 40인 나이가 되니 심란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계절이 바뀌니까 싱숭생숭 해질 수도 있고, 유튜브에 빠져서 늦게 자니까 컨디션이 엉망진창이라 마음도 같이 구겨졌을 수 있다.


요즘은 남편의 가을 타기를 수락하지 않기 위해 나와 아이의 일상을 알려주고, 남편의 일상에 관심을 갖는 톡을 열심히 보낸다.


남편을 관리하는 아내라니...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만큼 우리만의 관계가 맞물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났다. 이제 남편한테 글을 다 썼다고 카톡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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