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문 May 18. 2023

걸음과 걸음 사이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시집을 읽다 한참을 멈춰 있었다. 저 두 문장은 내 걸음을 멈춰 세우고,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 사이로 파고 들었다. 그날은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더 느끼지만 나는 참 걱정도 많고 생각이 많다. 어렸을 때보다 조금 나아진건 잠시 생각을 멈출 줄 안다는 것, 생각을 환기시키고 호흡을 규칙적으로 내 쉴 수 있다는 것. 그뿐이다. 내 머릿속에선 수천번의 종말이 바쁘게 일어나고 있었다.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어쩌면 나는 무서워하면서 끝내 걸음을 돌리고 후회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매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더라면 나는 숨이 막혀 죽었을지도 모른다. 겨울에 했던 선택과 봄에 했던 선택. 그 선택에는 후회가 없어야만 할 것 같아서 벅차다. 그 몫도 오롯이 내 몫이라 가끔은 모든 것을 모른 척하고 싶다. 눈을 감으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갉아 먹었고, 눈을 뜨면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현실에 안도보단 두려움이 먼저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며 파도처럼 휩쓸렸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부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누구의 말도 옳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들의 말에 휩쓸려 살다간 모래위에 남은 파도의 자국처럼, 내 몸에도 타인의 자국만 남고 정작 나는 사라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가득차 머리가 뜨끈해지고, 나만 생각하면서 살기에도 벅차다고 생각할때쯤, 저 글을 봤던 것 같다.



  무서워하면서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저 글을 매일같이 곱씹었다. 생각이 나를 집어삼킬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강아지와 산책을 했다. 핸드폰을 보지 않았고 더 생각하지 않으려 강아지의 걸음에 집중했다. 걷다가 멈춰서 나를 바라보는 저 검은 눈동자에 집중했다.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총총 걷는 동그란 뒤통수를 집중했다. 그러다보면 머리의 통증은 사라지고 산책을 하고 있는 나와 강아지만 남는다. 잠시 깨끗해진 머릿속에 문득 드는 생각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떠올리며 언제가 벌어질까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자학행위가 절대 나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



  끝까지 걸어가지 못한 건 그저 무서워서였다. 상처받을까 두렵고 겪어본 적 없는 감정의 형태에 내가 무슨 수로 버텨낼 수 있을까하는 막연함때문이었다. 여전히 생각을 비우는 일은 어렵고, 끝까지 걸어가고 싶다가도 멈추고 돌아서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때마다 그 순간을 보기좋게 저버리고 다시 걸어가는 건 여전히 나는 살아갈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 곁을 떠나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곁에 머무르겠지만 모두 잠시일 뿐이다. 살아갈 날은 지독하리만큼 길고, 너무 소중했던 이들은 언젠가 이름도 흐릿해질 것이다.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게 너무 많다. 내가 아닌 타인을 생각하며 보내는 이 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가벼워진다.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무서워하면서도 걸어가고 싶다. 막연함과 두려움은 여전히 내 등에 올라타 눈을 가리고 입을 막겠지만, 그럼에도 그 작은 틈으로 앞을 보고 숨을 내쉬고 싶다


* 안미온, 온 “생일편지” 中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