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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문 May 19. 2023

부산 여행_01

소란스럽게 다가오던 봄의 어느 날

  

  사월은 내게 꽤 버거운 달이었다. 회사의 지속된 경영악화로 퇴사를 선택했고, 남자친구는 이별을 고했다. 스물아홉, 올해 일월에 세워둔 나의 계획에는 퇴사도, 이별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계획에는 그런 것들을 담지 않으니까. 올해 내가 세운 계획에는 당연하게도, 회사를 꾸준히 다니는 것과 연애를 잘해보는 것. 운동을 꾸준히 하고 해외여행도 다녀와보는 것. 신용카드를 줄이고 돈을 모으고 소설을 써보는 것. 작년 계획과 별반 다를 것 없었으며 지금 내 삶이 변함없이 계속해서 지속된다면 이루지 못할 것도 없는 계획이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내 삶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계획한 대로 이뤄지기도 했다. 작년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 준비를 했고 가고 싶던 회사에 붙게 되었다. 이전 직장보다 더 좋은 조건이었고, 업무로서 커리어도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회사는 생각보다 빠르게 휘청거렸고 본부가 해체되면서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수많은 직원들이 퇴사를 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도 자의로 퇴사를 하든 타의로 퇴사를 하든 올해 안에 퇴사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생각이 든 게 삼월 중이었고, 나는 삼월 말에 급하게 퇴사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그린 계획에는 이 회사에서 꾸준히 커리어를 쌓으며 서른을 맞이하는 것이 올해 내가 이룰 수 있는 계획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퇴사를 하면서도 이렇게 퇴사를 하는 게 옳은 건진 퇴사를 하는 그 마지막 날도 알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날 퇴사를 한 게 옳은 일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나는 퇴사를 한 그날 나의 결심이 맞았고, 옳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지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퇴사를 하니 시간은 무한대로 많아졌고 그 무한의 시간 속에서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도 넘쳐흘렀다.      


  넘쳐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진로를 생각하기도 했고, 남자친구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맞지 않는 부분을 맞춰가야 한다는 마음은 생각보다 부담스러웠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고통스러워하면서까지 이어가야 하는 관계였는가 싶으면 그 고통보다 헤어지는 고통이 더 클 것 같았기에 이별이 답은 아니었다. 시간이 많아지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고 그 많아진 시간 속에서 나는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며칠을 보냈다.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다 남자친구에게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남자친구는 맞춰가는 것 대신 이별을 고했다. 맞춰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가 헤어지자고 했을 땐 당황스럽기도 하고, 여느 이별처럼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게 버거웠다.     


  퇴사를 하고 이별까지 하니 시간은 더 많아졌다. 주말에 잡혀 있던 남자친구와의 약속은 자연스럽게 깨졌고 매일 연락을 하던 사람도 사라졌다. 공허하고 무한한 시간 속에서 철저히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늘 헤어짐에 대해서 생각했고, 헤어짐을 유예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부질없는 생각들을 하루종일 하다 더 이상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불속에서 몸을 겨우 일으켜 기차 시간을 확인했다. 복잡하고 걱정으로 가득한 마음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었다. 잠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가 돌아가야 하는 건 분명했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서 떨어져서 그것들을 바라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도시를 떠올렸다. 내가 당장 떠날 수 있고 익숙한 곳이며 왜인지 모르게 가장 좋아하는 곳, 부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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