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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문 May 26. 2023

부산 여행_02

사월의 기록

  기차표를 예매하고, 숙소를 예약하자 내 머릿속은 온통 부산으로 가득찼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기에 기차표를 예매하기 전까지 많은 결심이 필요했다.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굳이 혼자 다녀와야 할까,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서 그때 갈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늘어졌다. 처음 시도 해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시작도 전에 그 시도를 가로막는 합리화로 머릿속에 가득 찼다. 당장의 생각을 멈출 필요가 있었다. 나는 머릿속을 메우는 생각들을 애써 외면하고서 기차표를 예매했다. 숙소는 광안대교가 보이는 곳으로 정했다. 숙소와 기차표를 결제하자 그제야 혼자 떠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부산 여행을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눈물이 나면 마냥 울어야만 했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출 생각이 없었고 엉엉 울다가, 훌쩍이다가 다시 엉엉 울길 반복하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는 당장의 슬픔이 지속될까 두려웠다. 고여 있는 우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끄집어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오로지 나의 힘으로 올라와야 했고 그래야만 했다. 그때 떠오른 게 여행이었고, 혼자 떠나는 것이었다.     

  여행은 2박 3일로 일정을 세웠다. 계획한 시간 동안 내가 무언가를 느끼고 많은 것을 경험하기엔 짧은 시간이기는 했다. 나를 붙잡고 있던 우울과 수많은 생각들은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조금씩 그 자리에서 밀려났다. 생각에도 창문이 있다면 환기를 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저 계획을 세울 뿐인데, 머릿속에 시원하고 맑은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부산으로 떠나기 전날 밤엔 잠을 뒤척였다. 기분 좋은 뒤척임이었다.

  오전 열 시, KTX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잠을 깊게 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차에서는 잠이 오지 않았다.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노래를 듣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고요한 적막이 오히려 편안하기만 했다.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봤고, 풍경들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창문 밖의 장면들은 꼭 지나간 과거 같았다. 오랜 시간 과거에 머무를 줄만 알았고, 지나치는 법은 알지 못했다. 이제야 과거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겨두는 법을 알 것 같다. 너무 오래 과거를 곱씹지 않으며 그때의 내 선택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믿음만 남겨두고서, 그렇게 조금씩 과거를 지나쳤다.

  창 밖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흘려보내던 중 부산에 도착했다. 나는 숙소가 있는 광안리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랐고, 기사님의 사투리를 들으며 부산 거리를 구경했다. 날씨는 흐리긴 했지만, 비가 내릴 것 같진 않았다. 월요일 낮의 부산 거리는 한산했다. 초록으로 가득한 거리를 달리며 창문을 내렸다. 시원하고 달큰한 바람이 불어왔다.

  부산은 왜인지 올 때마다 새로웠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더 그랬을까. 숙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고 저녁에는 광안대교의 야경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짐을 두고서 바닷가로 향했다. 바람이 제법 불었고, 평일이라 그런지 바닷가 근처에도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 한산함이 더 좋았다. 살짝 흐린 하늘과 계속해서 일렁이는 파도의 모습과, 바다의 소리를 들으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수많은 조개껍질이 모래사장에 콕콕 박혀 있었다. 오로지 내 걸음에 맞춰서 천천히 걸었다가, 멈췄다가 다시 걸으며 바다를 바라봤다. 한 번도 닿지 못한 바다의 끝을 생각하며 새삼 내가 겪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아주 거창한 것까지. 그중에 사소한 것들은 여행을 하면서 새롭게 겪게 될 것들이기도 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과거는 내 등을 떠민다기보단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불투명한 미래 속으로 걸어가는 게 마냥 두렵지 않은 건, 과거를 과거로만 바라볼 수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운동화 속으로 들어오던 모래의 감촉이 떠오른다. 사월에 부산에 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수많은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떠나온 이곳에서 나는 사월을 기록한다. 언젠가 사월을 떠올리게 되면 혼자 떠나온 부산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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