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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문 Jun 05. 2023

취향이라는 이름의 다정

계절 편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체로 여름을 닮았다. 노랑, 보라, 초록 짙은 갈색과 파랑. 여름은 견디기 힘든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계절이기에 여름이 다가오면 괜히 설레인다. 사계절 중 뚜렷하게 좋아하는 계절이 있다기 보단, 봄과 여름의 초입을 좋아한다. 정오 따스하게 내려앉는 햇빛과 나뭇가지 위로 움푹 돋아난 희미한 초록 그리고 몽우리진 목련, 벚꽃이 피기 직전인 봄의 초입을, 곧게 뻗은 나뭇가지 위로 돋아난 초록잎과, 동그랗게 생긴 나무의 그림자 위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살짝 달궈진 몸을 식히는 일과, 바스락거리는 여름 이불의 감촉과 햇빛이 내려앉은 자리마다 눈이 부신 여름의 초입을 좋아한다. 모든 계절의 초입은 짧으면 이주, 길면 한 달이기에 나는 그 순간을 오래 누리고자 노력한다. 올해는 봄과 여름의 초입에 여행을 자주 다녔던 것 같다.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린 기억들이 고스란히 글자로 남아 언제든 들여볼 수 있는 기록으로 남았다.      


  좋아하는 계절이 오면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계절마다 각각 다른 냄새를 맡으며 시간이 흐르고 있고, 겨울이 저물고 봄이 오고 있다는 걸 느낀다. 작년에는 못 보았던 봄의 모습을, 여름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시선을 밖으로 던진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는 커튼을 걷고 창밖을 보며 누워 있었다. 자취를 하기 전에는 약속이 없어도 날씨가 좋으면 밖으로 나가곤 했는데 자취를 시작하면서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작은 집은 창문을 열어두면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빛이 집 안 곳곳에 스며들곤 했다. 얇은 이불 위로 다롱이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서 낮잠에 들었고, 다롱이 머리 위로 햇빛이 내려앉았다. 잠에 깰까 싶어 검지손가락으로 다롱이의 이마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깊은 잠에 들었는지 깨지 않았고 햇빛이 내려앉은 다롱이의 이마가 따뜻했다. 고요한 여름의 한 낮. 열어둔 베란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하얀 다롱이의 털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아이의 몸에 내려앉은 여름의 햇빛을 오래 눈에 담아둔다. 오로지 여름이라서 가능한 순간들이기에.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모두 다르고 제각각이다. 그저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이라서 보단 유난히 좋은 기억이 많았던 계절이 무의식 중에 남아 그 계절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나에겐 그 계절이 봄과 여름의 초입이 된 것 같다. 그 계절에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순간들이 가득했기에 나는 매해 돌아오는 그 계절들을 다른 계절보다 더 기다리곤 한다. 아쉬운 건 너무 짧은 순간들이기에 더 자주 눈에 담아야 하고, 기록해야 그 순간들을 오래 곱씹을 수 있다. 여름의 초입을 좋아하다 보니 대체로 나는 가볍게 끈적이는 것들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보다 체온이 조금 더 높은 강아지를 끌어안는 일,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 살짝 열을 올리는 일,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받아내는 일. 어쩌면 여름 그 자체를 좀 더 사랑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내 취향을 계절로 표현한다면 여름을 좀 더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파랗고 초록으로 가득한, 스물아홉 번째의 여름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며 여름을 누리고자 한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이 순간들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다.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유월의 초입에서 나는 지나온 계절을 기록하고 점점 더 깊어질 여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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