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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문 Jul 28. 2023

여름 산책

우리가 여름을 보내는 법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집 안 곳곳에 스며든다. 베란다 너머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와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들려오는 알림 소리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계속해서 들려오는 공사 소리, 그리고 아주 가끔은 새소리에 눈을 뜨기도 한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되는 나의 아침은 대체로 제약이 없기에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한다. 밤사이에 와 있던 연락을 확인하고는 다시 휴대폰을 덮어놓는다. 햇살이 내려앉은 집 안을 둘러보다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다롱이에게로 시선이 멈춘다. 가르쳐 준 적은 없지만, 다롱이는 그 방석이 자신의 공간이라는 걸 아는 듯 늘 그곳에서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한다. 가끔은 내 옆에서 자줬으면 좋겠는데 불편한지 내가 깨어 있을 때만 침대 위에 있다가 다시 자신의 방석으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나의 뒤척임에도 눈을 뜨지 않는 다롱이는 꽤 깊은 잠에 든 모양이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서 잠에 든 다롱이를 바라본다. 다롱이 털은 전체적으로 하얀 털에 몸통에는 갈색털이 큼지막하게 무늬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두 귀도 갈색으로 물들어 있는데 몸통에 있는 색에 비해선 조금 연한 색이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는 다롱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괜히 다롱이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 진다. 자는 애를 깨우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꾹 참다가 손을 뻗어 다롱이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는다. 부드러우면서 작고 동그란 다롱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자 다롱이는 느릿하게 두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짙은 것 같으면서도 연한 다롱이의 두 눈동자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투명하게도 느껴진다.

잠에서 깬 다롱이는 침대로 올라와 내 품으로 파고든다. 더워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더워도 서로에게 엉켜 지내는 우리이기도 했다. 내 품으로 파고든 다롱이는 배를 까고 누워 앞다리를 허공에 휘젓는다. 얼른 만져달라는 표현이다. 다롱이의 배를 위아래로 쓰다듬어주다가 휴대폰을 만지면 다롱이는 다시 두 다리를 허공에 휘젓는다. 만족할 때까지 만져줘야 하는데 가끔은 허공에 휘젓는 작은 두 발이 귀여워서 일부러 만져주던 손을 멈추고 다롱이를 바라본 적도 있다. 그럴 때면 다롱이는 동그란 두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데, 그 모습 또한 사랑스럽다.

다롱이와 대화를 할 수 없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다롱이를 부른다. 다롱아, 다롱아, 하고 부르다 보면 다롱이는 몇 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봐주고 그 뒤에는 귀찮은지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가끔 그런 모습이 웃겨서 혼자서 웃다가 다롱아, 넌 어떻게 이름도 다롱이니. 하고 중얼거린다. 다롱이라는 이름이 이미지로 그려진다면 그게 다롱이 너 그 자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칠월 내내 이어지던 비소식에 다롱이와 나는 날씨와 눈치싸움을 하며 밖으로 나섰다. 잠시 비가 멈춘 것 같아서 옷을 챙겨 입고 있으면 다롱이는 이미 현관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본다. 강아지도 웃느냐고 묻는다면 강아지는 분명히 웃을 수 있다. 심드렁하게 침대 위에 누워 있던 다롱이는 내가 옷을 입는 순간부터 내 옆에서 폴짝 뛰며 내 주변을 빙빙 돈다. 그래, 우리 나갈 거야. 라며 다롱이의 몸에 하네스를 입히면 다롱이는 잔뜩 신나서 현관문을 발로 툭툭 긁는다. 매일같이 산책을 하지만, 간혹 비가 하루종일 내릴 때면 못하는 날도 생긴다. 하루 걸러 나가는 날엔 다롱이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폴짝폴짝 뛴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나를 올려다보며 활짝 웃는다. 한 번은 비가 그친 줄 알고 나갔다가 비를 쫄딱 맞으며 산책을 한 날도 있었다. 집으로 가자는 내 말에도 다롱이는 완강히 버티며 자신의 산책 코스를 모두 밟으려 했다. 비를 무서워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다롱이의 걸음은 거침없었다.

여름 속에서 우리는 한낮의 햇빛과 비를 피해 산책을 부지런히 즐긴다. 공원을 걷다 땀이 나면 벤치에 앉아 열을 식혔다. 여름밤은, 다른 계절과는 다르게 밤이 와도 그 어둠이 더 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커다란 나무 위로 일렁이는 나뭇잎 사이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뜨겁게 달궈진 몸도 조금은 식혀지는 기분이다. 내 옆에 앉은 다롱이도 혀를 내밀고서 열을 식히는 듯하다. 다롱이의 몸을 쓰다듬다 우리가 처음 만난 여름날을 생각하고, 계속해서 함께 맞이할 여름날을 떠올린다. 우리의 여름은 첫 만남과는 다르게 지금처럼 비슷하게 이어질 것 같다. 매일같이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하고 물을 마시고 서로에게 엉겨 붙어 있다가 다시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산책을 나간다. 가끔은 눈과 비를 피해, 또 어떤 날은 여름의 한낮과, 겨울의 저녁을 피해 적정한 온도가 내려앉은 시간대에 산책을 한다. 가을이 오면 낙엽을 밟고 봄이 오면 벚꽃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을 것이다.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인 채로 이번 여름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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