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잡 이야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순간, 나는 항상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영어 도서관에 있으면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도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지금은 캔들 공방을 운영하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원님께서는 머리가 비었네요.
재미로 사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해가 바뀔 때마다 은행 앱에 있는 신년운세를 본다거나 인터넷의 이달의 운세를 즐겨 보는 편이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서양 점성술을 보게 되었다.
사주도 아니고, 타로도 아니고, 서양 점성술이라니..?
망토를 입은 여성분이 손톱을 길게 기른 손으로 수정구슬을 어루만지는 상상과는 달리, 깔끔한 모습의 남자분이 컴퓨터 앞에 앉아 계셨다. 영어로 된 프로그램에 나의 정보를 넣고 이것저것 보시더니, 내가 태어나던 해의 별자리가 어떠했고 그 영향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별자리 이동에 따라 운이 어떻게 바뀔지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참을 재밌게 듣다가 상담이 끝날 때쯤 보여주신 종이엔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팔, 다리, 가슴 등 여기저기 동그라미를 그리셨는데 딱 한 군데, 머리에만 동그라미를 치지 않으셨다.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를 보며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 자, 여기, 여기, 여기. 제가 동그라미 친 이 모든 부분은 다 채워져 있는데 머리만 비어있네요. "
"... 네?! "
" 아, 머리가 나쁘다거나 지식이 없다는 건 아니고, 많이 배우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는 뜻이죠. "
휴...
머리가 비었다는 말에 괜히 찝찝했지만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말에는 격하게 공감했다. 예전부터 나는 항상 새로운 걸 찾아 배우고 경험하는 모험가 스타일이었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는 외국인들과 언어교환을 하거나 봉사활동, 소모임, 파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를 즐겼다.
일을 시작하면서는 배우는 것에 투자하며 영어독서, 한국어 수업 등 교육분야뿐만 아니라 꽃꽂이, 캔들, 조향, 아로마테라피, 유화, 캘리그래피, 실크스크린, 맥주 만들기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다. 취미로 시작해 자격증까지 취득한 것이 많은데 그 시작이 바로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었고 다음이 캔들 전문자격증이었다.
투잡? 쓰리잡? 아이원님이라면 다 할 수 있어요.
당시 영어 강사로 일하던 나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었다. 영어 강사를 하며 한국어 과외를 계속할지, 자격증을 살려 아예 한국어 전문 과외를 시작할지, 혹은 캔들 공방을 차릴지 등 마음이 복잡했다. 점성술을 보러 간 이유도 사실 그 때문이었다. 나의 이런 고민을 듣자마자 하신 답변은 이러했다.
" 투잡이든 쓰리잡이든 아이원님이라면 할 수 있어요. 아니, 성향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한 가지 일에 쉽게 지루해하니까요. "
" 오..! "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맞아서라기보다는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주를 재미로 꾸준히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의하라는 점은 조심하고,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은 잊어버리고, 좋은 일과 듣고 싶은 말만 기억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미 결정을 한 상태에서 내 결정에 대한 응원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한국어를 가르치고 캔들을 만든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나의 생활, 그리고 나의 직업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