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원 Aug 17. 2021

때론 어른들도 그네가 필요하다

눈치 보지않고 탈 수 있는 나만의 그네

한국) 집 근처 공원

호주에 잠시 머물 당시, 집에 가기 위해 가로질러야 하는 공원에는 그네 2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놀이터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생각 없이 지나던 어느 날, 그 그네가 내 인생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생겼다.



여느 날처럼 공원을 지나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굵은 여자의 목소리.


주위를 둘러보니 한 여성이 그네를 타고 있었다. 저러다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큰 각도로, 호탕하게 웃으며 말이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그네 타는 것을 계속 보게 되었다.

'뭐야..?'라는 내 반응은 이내 '재밌겠다'로 바뀌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그네를 탄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도 몇 번이나, 다 큰 성인들이 그 그네를 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주변에 보호대가 설치되어 있는 다른 그네도 있었는데 그건 아이들용이고 이건 어른들도 탈 수 있는 그네였던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다.) 

그렇게 며칠을 관찰(?)만 하다가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다. 주변에 아이를 비롯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그네 끝에 살짝 걸터앉았다. 생각보다 넓고 편했다. 


그네에 앉은 후에도 혹시 누가 보고 있진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한 후 발 끝으로 땅을 살짝 밀며 앞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언제 눈치를 봤냐는 듯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만 집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앞에 펼쳐진 푸릇푸릇한 나무들, 점점 넓게 보이는 하늘, 귀를 스치는 바람소리..


각도가 커질수록, 높이 올라갈수록 내 입꼬리도 점점 올라갔다. 그네의 움직임에 따라 바람도 두 뺨을 스치며 앞뒤로 살랑거렸다.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네가 올라갈 때마다 심장은 쿵쾅댔고 마치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움인가.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그 여자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겠구나! 그렇게 한 5분쯤 지나 전과 다르게 상쾌해진 기분으로 그네에서 내렸다. 


그 후로 가끔, 아무도 없을 때 그 그네를 한 번씩 타곤 했다. 역시나 탈 때마다 새처럼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며 그녀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또다시 그네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밤이 되어 아무도 없는 곳일지라도 호주에서처럼 자유로이 그네를 탈 수 없었다. 아이들과 시설의 안전이 가장 큰 이유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끔 밤에 산책하는 공원에서 텅 빈 그네를 볼 때면 또다시 '그네병'이 돋는다. 


답답한 일이 있었던 하루

그 어떤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날

속상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날

 

내겐 나만의 그네가 필요했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나만의 그네. 


다행히 지금은 밤 산책과 아침 글쓰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때론 어른들도, 눈치 보지 않고 한바탕 웃음을 쏟아낼 수 있는, 그런 그네가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