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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원 Aug 26. 2021

우산이 있어도 쓰고 싶지 않은 날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는 비 오는 날


예전에는 비 오는 날이 너무 싫었다.


신발과 양말이 젖는 것도 싫었고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도, 젖은 우산을 들고 실내에 들어가는 것도, 바닥에 물이 떨어지는 것도, 바닥이 미끄러운 것도 모두 싫었다. 


특히 잘 넘어지는 나로서는 비만 오면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지, 어떤 길로 가야 할 지에서부터 미끄러지지 않으려 바닥만 보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까지 모든 것이 신경 쓰였다. 비가 많이 와서 장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날이면 오후에 꼭 화창해져서 장화 신은 내 발이 민망해지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비가 좋아지기 시작하다


그런 10대, 20대를 지나 30대가 된 지금,  특별한 이유 없이 비 오는 날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굳이 계기를 찾자면 한 2년쯤 전, 작업실에 홀로 있던 어느 날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조용히 작업하고 있던 그날. 창가에서 뚝 뚜둑,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갑자기 쏴악 비가 쏟아졌다. 아늑한 작업실 안에서 통창으로 바라보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은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웠고 그 어떤 ASMR보다 듣기 좋았다. 


그다음부터는 비가 올 때면 LP를 들었다. 빗소리와 음악소리가 어우러져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후로 비 오는 날엔 실내에 있으면서 음악을 들으며 밖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비를 즐기기 시작하다


지금은 그보다 한 단계 레벨업이 되어 밖에 있는 것도 좋아한다. 여전히 신발과 양말은 젖었고 우산 들고 다니는 것도 귀찮긴 하지만 날씨 자체를 즐기게 된 것 같다.


이것 역시, 이렇다 한 계기보다는 마치 어릴 때 먹지 않았던 김치를 지금은 찾아서 먹게 되는 것처럼, 나이가 들며 취향이 바뀌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특히 마음이 무거운 날,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비를 최대한으로 즐길 수 있는 최적의 날이다. 그래서 이런 날에 비가 오면 밖으로 뛰쳐나간다. 우산을 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우산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우산이 있어도 쓰고 싶지 않은 날


마음이 힘들었던 어느 날, 머리를 비우기 위해 공원을 걸었다. 한참을 생각에 빠져 걷고 있는데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워낙 변덕스러운 날씨가 반복됐기에 작은 우산을 챙겨갔지만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가만히 서서 비를 맞았다.


나는 원래 눈물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울고 싶을 땐 있어도 혼자 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화를 보다가 우는 경우도 드물다. 최근 언제 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잘 울지 않는다. 울음이 없는 건지, 참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가만히 비를 맞고 있으니 기분이 후련해졌다. 마치 하늘이 나를 대신해 울어준 것처럼, 내가 소리 내어 운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그랬나 보다. 

나는 울고 싶었나 보다. 

그날이 바로, 내가 울고 싶은 날이었나 보다.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다. 많은 방법을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최근 찾은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혹시 힘들거나 울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면,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지만 옆에 아무도 없다면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나가 보자. 비를 가장해 실컷 울어도 좋다. 


그것으로 당신이 위로받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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