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 열린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새해도 어느새 과거가 되었다. 새해부터는 시간이 마냥 흘러가게만 두진 않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나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주말에도 늘어져있지만 말고 뭐라도 해보고자 이번 주말에는 전시회를 다녀왔다.
사진, 미술에는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아 전시회에는 발걸음이 잘 닿지가 않는다.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그 속에서 뭐라도 하나 느끼고 건져내와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나로서는 감동을 떠나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 것조차 힘든 미술작품 감상은 일종의 숙제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내가 과감하게 올해의 첫 전시회로 <어떤 삶, 어떤 순간>을 택한 데에는 사실 엄유정 작가의 영향이 컸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잔나비의 앨범커버로 처음 접한 엄유정 작가의 그림에서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게 잔나비의 영향인지 엄유정작가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엄유정 작가의 작품만은 실제로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세계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주변과 관계 맺는 여러 순간들을 마주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보편적인 주제도 다가가기 쉬웠고, 그렇기에 이번에는 전시회를 통해서 뭔가를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처음 만난 작품은 1층에 전시된 강운 작가의 작품이다. 사실 미술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의 말은 솔직히 너무 과장된 게 아닌가 생각했던 나는 이 작품을 보고,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상실과 아픔으로 스크래치난 마음이 서서히 치유되며 그 상처 위로 새살이 돋아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캔버스 위에 덕지덕지 돋아난 새살을 보는 순간 울컥 눈물이 솟았다.
어릴 땐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도 있고 내가 저지른 실수로 인해 인생이라는 나의 캔버스에 얼룩이 생겨버리는 일도 있다. 이전에는 그게 너무 속상했다. 나의 삶은 새하얀 비단길처럼 주름 하나 잡히지 않은 채로 더럽혀지지 않고 온전하기만을 바라왔었다. 그래서 작은 흠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내내 그 흠집만을 바라보며 내 삶 전체가 망가진 양 마음 아파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의 캔버스에 생겨난 스크래치도 그리고 그 위에 돋아난, 스크래치가 나기 이전의 뽀얀 살과는 결코 같지 않을 두꺼운 새살도 그것대로 아름다운 것임을. 상실도 상처도 결국은 아물기 마련이고 그것은 결국 흔적으로 남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여 그 자체로 나의 삶이 되어버리는 것이며, 그것은 결코 흉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기분이라 눈물이 났다.
엄유정 작가의 그림에는 어딘가 모르게 따뜻한 기운이 있다. 투박한 선으로 삐뚤빼뚤 그어진 일상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묵직한 여운이 느껴지는 것이, 우리의 일상과도 닮아있다.
엄유정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2층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맴돌았던 이유는 바로 <Leaves>
압도당했다고 하기에는 따뜻했고 위로받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림을 사는구나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보고 싶었으니까. 허락한다면, 이 앞에다 간이의자 하나 세워두고는 하루종일 앉아서 바라볼 수도 있을 정도로 이 작품에 푹 빠져버렸다. 초록의 녹음들. 찌는 듯한 더위에도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이 초록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엄유정 작가의 손에 의해 돋아난 초록의 잎사귀들은 희망 그 자체였다. 그래. 희망이었다. 일상의 그 모든 지친 걱정과 근심이 저 그림 앞에 서 있는 그 잠시동안은 빽빽한 잎사귀들로 가려져 모든 것이 고요하고 편안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연이 좋아지는 이유는, 내가 점점 일상에 치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그럼에도 언제나 변하지 않는 자연의 묵묵함을 그들의 너그러움을 공경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이런 나를 자연은
아무 대가도 없이 언제나 따뜻하게 품어주기 때문이다. 엄유정 작가도 자연의 그런 묵묵함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어떤 순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로 가득 차있고, 또 어떤 순간은 손 끝 하나도 움직이고 싶지 않을 만큼 무기력하다. 어떤 순간은 죽을 만큼 아팠고, 어떤 순간은 이대로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했다. 이런저런 순간들이 모여 삶이 되기에, 어떤 삶도 결코 단순하지 않고, 가볍지 않고, 쉽게
정의할 수도 없고, 그래서 오묘한 것이다. 좋다고 말할 수도, 그렇다고 나쁘다고 말할 수도, 쉽지도, 어렵지도 않다. 어떤 삶은 추하기도, 아름답기도 하고, 어떤 삶은 추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기도 한다.
삶이라는 무겁고도 가벼운 이 것에 대해 나는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까. 오늘부터 그 치열한 고민을 시작해보려 한다. 흔쾌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