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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를보다 Aug 20. 2020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

 요즘 나는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처마에 앉아 잘 삶아진 쫀득한 옥수수를 뜯어먹으며 여름 바람을 느끼는 일. 주방에서 짭쪼롬한 찌개 냄새와 함께 흥얼흥얼 흘러나오는 엄마의 콧노래를 듣는 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산 중턱에 올라 숲의 기운에 휩싸여 잠시 땀을 식히는 일. 나른한 오후,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는 일. 이런 것들은 내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내 삶 속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버릴 한 장면일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하지도 못할. 그러나 내가 그 장면 속에 녹아들어 그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또 그 순간을 겪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면 그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좋은 추억으로 '내 마음속에 저장' 된다.


 매주 나가던 요가 수업에서 요가 선생님이 아무래도 다음 주부터는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난봄, 코로나 대유행에 이은 2차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 켠으로는 코로나 사태가 언젠가는 종식되고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늘 매주 월, 수, 금은 요가를 하러 가는 날로 정해져 있었는데, 당분간 요가를 하러 올 수 없다는 말을 들으니까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제 정말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사람들은 대개 미래의 풍요와 안정을 위하여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나 또한 미래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적금통장에 매달 돈을 부어 넣는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절제하고 참아내며 돈을 아끼고 또 아껴가며 그것이 성숙하고 철든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한 마을의 부자가 전 재산을 털어 금덩이 하나를 샀는데, 그 금덩이를 누군가가 훔쳐갈까 봐 아무도 모르는 곳에 금을 묻어두고는 매일 밤마다 금을 꺼내보며 좋아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부자의 하인이 부자의 뒤를 밟아 금이 있는 곳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날 하인은 부자의 금덩이를 들고 도망가버렸다. 그 사실을 알고 세상이 무너져라 울고 있는 부자를 보며 지나가던 행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만 좀 우시오. 그 금덩이랑 비슷한 돌덩이 하나 묻어두고 금이라 생각하고 믿으면 되겠소. 써먹지도 못할 것, 돌덩이랑 다를 게 뭐요?" 밤마다 금을 꺼내보며 좋아하는 우화 속 부자의 모습이 마치 쌓여가는 적금통장 잔고를 보며, 뿌듯해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학창 시절의 나는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매일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에 매달려 살았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좋은 곳에 취업하기 위한 스펙 쌓기에 매진해왔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며 1년을 꼬박 집과 도서관만 왔다 갔다 하며 살았다. 그렇게 공무원이 되고 나니, '번아웃'이라고 해야 할까? 말로 표현 못할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미래를 위해서 놀고 싶은 것도 참고하고 싶은 것도 참으며 달려왔더니 어느새 20대 후반. 주변에서는 어서 결혼하라고 성화들이다. 그럼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적당한 상대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 뒷바라지하는 것일까? 내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한 인생을 살아왔을 뿐 내 인생 속에서 진짜 '나'를 위해 살아온 날들은 거의 없었다.


 미래를 바라보고 달린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 미래를 준비하고, 차근차근 다음의 목표를 이루어나가고 또 다른 목표를 세워나가는 것. 그런데 그렇게 미래만 보고 경주마처럼 달려오다 보니, 내게 남은 것은 허망함이었다.


 가끔 옛 친구들과 만나면 우리는 과거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안줏거리 삼아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끝나면 떡볶이 집으로 곧장 달려가 떡볶이와 피카츄 돈가스를 먹었던 일, 한 여름에 처음으로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떠났던 일. 어쩌면 그 순간들 만큼은 오로지 현재의 나를 위하여 살아온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친구들과 먹었던 매콤 달콤한 떡볶이의 맛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혀끝에 맴돌 수 있고, 한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살이 새카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자전거를 타던 그 날의 공기를 지금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 순간에 충실하여 현재를 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그 떡볶이 집은 사라져서 이제는 찾아갈 수 없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과감히 제주도 여행을 떠나는 것 또한 꿈꿀 수 없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라고들 한다. 당장 내일 이 시간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확률은 과연 몇 % 일까? 보장되어 있지 않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희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나는 적금통장을 깨버렸다. 그러고는 그 돈으로 엄마 아빠와 맛있는 1++A급 한우를 배 터지게 먹었다. 적금통장 속의 돈은 외제차가 될 수도, 결혼자금이 될 수도, 번듯한 집 한 채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그 날의 행복은 수십억, 수백억으로도 맞바꿀 수 없는 것일 테니까.


 건강한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있는 엄마 아빠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 맛있는 음식을 부모님께 대접할 수 있는 돈,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하루 속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그 어느 한순간도 당연했던 것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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