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있으세요?”
소개팅, 면접, 신입사원 환영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고전적인 질문이다. 취미는 단순히 즐겨하는 활동의 개념을 넘어 한 사람의 관심사와 성향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증거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탐구하고 대화를 이어나가기에 여전히 이만한 질문이 없다.
취미는 인생에 활력을 주고 정신적인 만족감을 높인다고 한다. 혹자는 취미가 본업이 되는 시대,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돈으로 이어지는 수단 또한 될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취미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혼자 하는 취미부터 동호회를 통한 단체 취미 생활까지. 누군가는 꽃꽂이를 하고, 또 누군가는 러닝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교 모임을 하며 저마다의 목적과 성미에 맞는 취미 생활을 한다. 불경기라고는 하나 적어도 전쟁통이나 보릿고개 시절은 아니니 사람들 저 마다의 경제 수준에 맞는 돈을 지불하며 취미를 갖는다.
“이언 씨는 취미 있으세요?”
회사 팀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회의 시간이 다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고 20분이나 지난 시간. 팀 내 최고 내향인 2명이 목이 빠져라 다른 팀원들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 그녀가 먼저 용기를 냈다.
“취...미요?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취미라고 해야 하나 자주 하는 활동을 취미라고 해야 하나.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요샌 자주 쓰지도 못하고 있고 괜히 엄청난 필력가로 오해할 것 같으니 패스. 집에서 화초를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너무 에겐남 처럼 보일 것 같으니 이것도 패스. 코인노래방에 가는 걸 좋아하지만 최근엔 흥미가 떨어져서 이것도 패스.
회사란 곳은 실제의 나보다 남들이 봤을 때 그럴듯하고 평범하며 논란의 소지가 없는 대답을 내놔야 하는 곳이므로 그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대답의 후보가 머릿속에 오르락 내리락. 서슬 퍼런 자체 검열이 시작되었다.
그래, 가장 무난하고, 성실해 보이고, 남자다워 보이는 대답을 꺼내자.
“운동 좀 깨작깨작 해요”
운동을 극혐 하면서 일주일에 고작 2번 어거지로 헬스를 다니는 것을 취미라고 말해버렸다. 사람들이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을 가장 이해 못 하면서, 운동은 하기 전에도, 하는 중에도, 하고 난 후에도 짜증 나는 활동이면서 취미라고 했다. 그나마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어서 소심하게 깨작깨작이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취미를 묻는 질문은 역시 전통적인 대화 촉매제인지 나의 대답을 기점으로 팀원 분은 사내 피트니스 센터에서 누군가 나를 보았다는 목격담을 공유해 줬고, 나는 도대체 누가 그 사람 많은 헬스장에서 날 본 것일까 캐묻고 싶어져 순조롭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럼 ㅇㅇ님은 취미 있으세요?"
드디어 내가 질문할 차례다. 솔직히 진심 하나도 궁금하지 않고 얼른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내향성을 깨고 질문을 던진 그녀의 용기에 화답하고자 의례적으로 답질문을 던졌다.
"취미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죠"
회사와 가정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살아가는 워킹맘의 솔직한 토로였다.
이거였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 취미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지. 회사에 나와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 끼고 일하며 먹고살아내는 일 만으로도 진이 빠지고 맥이 풀리는데. 퇴근하면 밥 먹고 씻고 자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취미는 무슨 취미야.
"맞아요! 취미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죠"
합석한 지 20분 만에 처음으로 나에게서 사람 같은 리액션이 나왔다. 그녀의 대답에 천 번 만 번 공감해 버렸다. 취미 예찬론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들의 말에 꾸벅꾸벅 고개를 끄덕이고 나면 움직일 에너지가 없는 게 나란 사람. 취미가 없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나니까. 20대 때만 해도 없는 에너지를 미래에서 가불해와서 라도 억지로 취미를 만들고 움직이려 노력했겠지만 번아웃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는 나를 좀 내버려 두는 법을 배웠다. 취미가 없는 나를 스스로 들들 볶지도 이상하게 보고 싶지도 않다. 취미를 갖는 일은 분명 좋은 점이 더 많지만 지금은 그냥 나를 좀 내버려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