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의외로 고현정을 대답할 것이다. 평소에 그녀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찾아볼 정도로 엄청난 팬은 아니지만 작품 속에서 내가 본 고현정은 언제나 '진짜'였다.
나는 특히 작품 속에서그녀가대사 처리하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극 중 인물과 혼연일체가 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목소리, 말의 높낮이, 잔혹하리 만큼 리얼한 감정 처리까지. 다사다난했던 그녀의 개인사는 안타깝지만 아픔을 겪고 놀랍도록 깊어진 연기라는 것에는 반문의 여지가 없다.
지난 수십 년간 신비주의에 가려져 있던 그녀가 자분자분 대중의 중심으로 걸어 나온 것은 올해부터이다. 유튜브 '요정재형'에서 보여준 그녀의 소탈한 모습이 대중들에게 고현정에 대한 편견을 깨 주었고, 뒤이어 그녀의 개인 유튜브가 꽤나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유퀴즈에 출연했다. 배우 고현정의 삶은 물론, 우리 주변에 너무나 흔한 현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1971년 생 여자로서의 이야기도 가감 없이 털어놨다.
자식들과함께 살지 못했기에 '친하지 않다'는 것이 이토록 슬픈 지 몰랐다는 얘기를 털어놓았을 때,
자신을 너무 모질게 바라봐주지 말아 달라며 '조금, 도와달라'는 말을 할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이 울컥했다.
정상에서 눈부시게 빛나 보이는 스타 또한 스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고, 엄마였고, 여자였다. 화려해 보이는 모습 이면에 깔린 짙은 외로움과 연약함을 보며 사람 사는 게 어찌 보면 다 똑같구나 싶었다.
'사랑은 깊은 거더라고요. 그리고 자주 안 와요'
이 말을 들을 땐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단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이미 끊어진 인연이지만 미래의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면 하는 사랑이 내게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참 애석하게도 그런 사랑은 정말 일생동안자주 오지 않는다. 삶에서 몇 번 없는 그런 절절한 사랑 보다, 함께 부암동에 카레를 먹으러 갈 수 있는 안정적인 사랑을 기다린다는 그녀의 말 또한 퍽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어른의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일까.
꽤나 굴곡진 삶은 살아낸 사람이라 그런지 애써 꾸며내지 않아도깊이와 진솔함이 묻어났던 인터뷰였다. 대사가 아닌 인간 고현정의 한 마디 한 마디 또한 거짓 없는 '진짜'였다.
삶의 형태는 모두에게 다르지만 인생이라는 게 원래 누구에게든 녹록지 않은것 같다. 평범한 것이 가장 귀한 것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내게 주어지는 일상적인 것들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행복도 고현정이 말하는 행복처럼 좀 더 구체적인 행복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