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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May 22. 2023

글쓰기 연습


  사월에 이어 오월에는 일요일마다 글방에 다니고 있다. 기억하기로 첫날에는 열 명이 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글방 지기를 포함해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집에서 글방까지는 내 걸음으로,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사십 분 정도가 걸린다. 휴일이니만큼 남편과 늦은 점심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선다. 사월의 두 번째 일요일에 시작한 모임이 벌써 7 주차를 앞두고 있다. 그사이 기온은 점점 올라 한낮에는 25도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연희동을 시작으로 연남동을 지나 동교동 삼거리에서 신촌 방향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이마가 땀으로 젖어있다.

  올봄에는 글방에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니는 일 말고 뭔가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이 좋은 계절을 치료만으로 소진하고 싶지는 않았다. 글방의 강제성을 빌리면 억지로라도 한 주에 한 편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고 과연 그렇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비교적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다. 그때의 기질이 그대로 이어져 어떤 조직에 속하든 리더의 말을 잘 듣는 어른이 되었다. 나 같은 성향의 이들에게 약간의 강제성과 독려는 꽤 효과가 좋다. 매주 월요일에 글방 지기가 쥐여주는 글감으로 금요일 자정이라는 마감 시한에 맞춰 가까스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금요일 혹은 늦어도 토요일까지 글을 제출한 후에는 모임 전까지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다. 같은 주제로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슨 질문을 던지고 어느 시절의 이야기를 가져오는지, 어떤 인물을 보여주는지, 어떤 세계의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살피는 일은 설레고도 재미있다. 또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한데, 글을 읽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글에 대한 합평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글을 쓸 때만큼 다른 이의 글을 읽는 데에도 적지 않은 품이 든다. 몇 편의 글을 내 글만큼 꼼꼼히 읽고 객관적이고 냉정하지만 다정하게 예의를 갖춰 할 말을 고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 좋다. 쓰고 싶은 마음은 자신을 궁금해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타인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들, 삶을 정돈하고 잘살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 마음을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 어쩌면 내가 글방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그들 틈에 있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와는 별개로 나는 요즘 글쓰기가 영 재미없다. 마음먹고 글쓰기를 시작한 지 일 년 반이 흘렀건만 여전히 글이 쉽게 써지지 않는다. 쓰면 쓸수록 어렵고 힘들다. 계속해서 이렇게 어렵기만 하다면,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한다면 글을 계속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쓰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서너 시간, 빠르면 두 시간 안에도 에세이 한 편을 써내는 것 같던데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빨리 써본 적이 없다. 한 편을 쓰는 데 드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적어도 다섯 시간은 족히 걸린다. 가장 큰 문제는 한 시간 넘게 한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하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가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고 다시 앉아 글을 쓰다가 문득 빨래를 돌리거나 설거지를 하고 산책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글을 쓰는 식으로 띄엄띄엄 하루를 온통 글쓰기에 들여야 한 편이 완성된다.

  글을 쓰면서 자주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방금 쓴 문장을 자꾸만 다시 읽는 나의 구저분한 습관 때문이다.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는지 맞춤법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몇 번이고 읽으며 확인하는 것이다. 한 문단을 쓰고 나면 이전 문단과 연결이 자연스러운지 확인하기 위해 읽고 또 읽는다. 글이 너무 써지지 않을 때는 쓴 글을 통째로 새 창에 옮겨 적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쓰다 보니 아무리 내 글이라지만 정말이지 지친다. 이렇게 글이 쉽게 써지지 않고 쓰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까 자꾸만 글쓰기를 나중으로 미루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금요일에야 글을 쓰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간 내 글을 읽어온 글방 지기는 작가에게 너무 엄격한 기준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기준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글이 나오는 것 같은데, 글을 거르는 체가 너무 촘촘해서 걸러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작가가 생략한 부분을 더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나의 글쓰기에 지나친 검열의 과정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아본 것 같다. 고작 몇 문장을 쓰면서 나는 몇 번이나 멈춘다. 자꾸만 돌아가서 다시 읽는다. 무언가 쓰고 싶은 마음이 너무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번번이 가로막힌다. 나는 이 마음이 무섭다. 이 마음이 글쓰기를 그만두게 한 적이 있었다. 다시 글쓰기를 내려놓으면 지금의 나는 무엇에 기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글을 써보았다. 글감도 마감도 없이 그저 답답한 마음을 좀 풀어보자 싶어서 쓰기 시작했다. 떠다니는 상념들을 오래 붙들지 않고 문장으로 옮겨 적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쓰자고 다짐하고도 몇 번이나 앞 문장으로 돌아가 읽고 또 읽었지만, 이런 연습을 계속해서 해볼 작정이다. 내가 쓴 문장을 의심하지 않고 언젠가 쉬지 않고 한 페이지를 쓸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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