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해야 할 일의 목록에 언제나 글쓰기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해야 한다고 느끼면서 하지는 않은 일로 해야 할 일의 목록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일이다.
한때는 글 잘 쓴다는 말에 혹해서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삶을 꿈꿨던 적도 있다. 교수님과 작가님들을 쫓아다니며 첨삭 지도를 받고 글쓰기 모임을 다니며 합평을 받기도 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 서로의 열정에 기대어 쓰고 또 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쉽게 쓰지 못하는 사람이다. 너무 깊게 들여다보고 너무 오래 고민하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다. 글쓰기는 내게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고, 꿈은 너무 멀었다. 그 꿈을 잡고 살 만큼 나는 간절하지 않았고, 현실에는 더 재미있거나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많았다. 그렇게 글은 점점 짧아지다가 간간이 써졌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를 아주 놓지 못한 건 내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 내가 나에게 해줘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는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갈무리하기 좋은 방법이다. 아직까지는 내 마음을 돌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매일을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가 결국 한 자도 쓰지 못한 채로 몇 날, 몇 년을 보냈다. 그랬더니 내가 너무 많이 쌓였다. 내 안에 정리되지 못하고 풀어지지 못한 내가 너무 많아서 이걸 다 가지고 사는 게 점점 버겁게 느껴진다. 이제는 정말 써야겠구나 싶다. 이제 그 수많은 ‘나’들을 내려놓고 가볍게 살고 싶다.
글을 쓰려고 앉으면 자꾸만 무거워지는 마음에게도 가벼워져도 괜찮다고, 대단한 글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맞춤법쯤 틀려도 괜찮고, 문장이 조금 이상해도 아무 문제없다고 알려주고 싶다.
아무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