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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Nov 18. 2021

나의 주치의

내게 무해한 사람

처음 심리 상담이란 걸 받기로 한 날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한 시간 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는 걱정도 잠시, 그동안 몰랐거나 나도 모르게 외면해왔던 나의 일면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심리 상담은 남편의 회사에서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 차원으로 제공된 복지 서비스였다. 그때의 남편은 본인보다는 나에게 상담이 더 필요할 거라 판단했던 것 같다.


상담 첫날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색하면 어쩌지 싶었던 걱정이 무색할 만큼 한 시간은 굉장히 빨리 지나갔다. 그날 눈물을 한참 닦아내느라 티슈를 몇 번이나 접고 또 접었는지 모른다.

이후로도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매번 많이도 울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마음을 놓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거나,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내 상처만큼이나 그들의 속상함도 염려하느라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 없다. 내가 하는 말의 파장에 대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쉽게 나를 털어놓을 수가 없다.


그런데 상담 선생님 앞에서는 달랐다. 이 낯선 타인 앞에서 나는 더없이 솔직해졌다. 그는 나의 모든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상처 받지 않고, 나를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나의 상처에 대해 아무런 사심 없이 얼마나 힘들었냐고, 너무 아팠겠다고, 너무 슬펐겠다고 몇 번이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울면 티슈를 뽑아주고 다 울 때까지 맞은편에 앉아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그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울 때 나를 안아주는 것과는 또 다른 위로였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말을 걸어주고 그 말을 천천히 들어주었다. 내가 놓친 나를 기억하게 하고 과거와 현재의 감정들을 세심하게 살펴보게 했다. 그리고 그 먹먹하고 아픈 감정들이 말이 되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상담 횟수가 늘어갈수록 내 안에서 방황하던 어떤 조각들이 방향을 찾고 정돈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바로 다음 상담일을 기다리게 되었고, 깊은 곳에 숨어있던 이야기들도 수면 위로 떠올라 제 자리를 찾고 싶어 했다.


이후로 드문드문 상담을 받은 지 햇수로 칠 년쯤 되었다. 돈을 내고 얻는 시간과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담 시간은 내게 큰 위로가 된다. 어쩌면 돈을 내면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상담 선생님을 내 정신 건강의 주치의로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배부른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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