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한 달 살기 10일 차
10월 21일 수요일
남해에 온 지 10일 만에 첫 비가 내렸다. 아침에 부스스 내리고 만 비지만, 어쩐지 비가 반가웠다. 아침에 눈을 떠 바라본 창밖 풍경에 물기가 가득했고, 온 생명들이 즐거워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우산 들기 귀찮아서, 물이 튀는 것이 찝찝해서 비 오는 날을 꺼렸던 도시의 나는 어느덧 창밖의 나무와 흙을 바라보며 비를 반가워하고 있었다.
자리를 털고 나가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물기를 머금은 대기가 뺨에 와 닿았다. 어느덧 이 남쪽 지방에도 제법 가을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지난밤 내린 비가 마치 봄비 같이 느껴졌다. 이 가을이 끝나면 겨울이 아닌 봄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해 전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 중 묵었던 숙소의 주인 할머니는 겨울이 추워야 다음 해 올리브가 맛있다고 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추운 겨울이 싫다. 맛있는 올리브는 사랑하지만, 추운 겨울은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맛있는 열매를 위해 올리브가 감내해야 하는 겨울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만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낙'만 가득하면 안 되는 걸까.
촉촉한 대기를 가르며 달렸다. 전날 조도로 여행을 다녀와서 피곤하긴 했지만, 천천히 달리며 몸과 마음을 깨웠다. 오늘은 조도에 같이 갔던 팀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날이었다. 그마저도 저녁식사 당번 몰아주기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하여 저녁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하든 즐거운 요즘이지만, 오늘은 좀 쉬어가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아침운동을 마치고 아침도 잘 챙겨 먹었다. 방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숙소 1층에 있는 노래방에서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석처럼 끌려들어 문을 열어보니 같은 팀인 친구 몇몇이 감성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비가 내려서일까. 그들의 미간은 어느 때보다 깊은 고랑을 만들며 발라드를 쏟아냈다. 오전 시간에 다소 소화하기 힘든 '렛 잇고'까지 열창하는 친구들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비 내리는 휴일과 제법 잘 어울렸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을수록 배는 더 자주 고파진다. 휴일의 배꼽시계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달려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또 돌아보면 저녁을 달라고 자기주장을 한다. 휴일엔 역시 짜장라면이니까. 숙소에 남은 친구들과 프라이를 올린 짜장라면을 끓여 탄수화물 파티를 즐겼다. 즐거운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 팀원 중 한 분인 싱어송라이터 분께서 커피포트에 끓여 만들어주신 커피를 마셨다.
서울에서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하던 그의 일상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을 찾던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줄어들었고, 어느 자리든 턱 앉아서 길거리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던 도시의 활력은 차츰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짐을 차에 싣고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났다. 그리고 달리고 달려 남해에 도착했다. 예전에 우연히 들렀던 남해가 참 좋았었기 때문에 한 달을 살아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을 보자마자 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랜 로망이었다는 그의 수동 갤로퍼 안에는 그의 손떼와 애정이 가득한 기타 3대를 포함한 중요한 물건들이 남아 있었다. 만약 내가 차 한 대에 짐을 싣고 무작정 떠난다면 나는 무엇을 싣고 무엇을 포기할까.
아마도 그 싱어송라이터 분은 마지막까지 기타를 지니고 계실 것 같다.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모습이 가장 행복해 보였고, 가장 편안해 보였다. 커피를 마시고, 나와 숙소에 남아있던 한 친구는 그분의 기타를 하나씩 손에 쥐고 기타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언제나 잘 치고 싶었던 기타. 하지만 늘 F코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이번엔 운 좋게도 프로 싱어송라이터와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이분을 기타 선생님으로 모시며 어디서든 멋들어지게 한곡쯤은 연주할 수 있도록 실력을 쌓아보기로 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또 다른 강습자 친구는 레옹의 테마곡인 'Shape of my heart'를 배우기로 했고, 나는 에디트 피아프라는 프랑스 국민가수의 샹송, 'La vie en Rose(라비앙 로즈)'를 배우기로 했다.
샹송은 가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도, 부드러운 발음과 리듬이 듣기 좋고 멜로디도 서정적이나 슬프지 않아 감성이 촉촉해지는 정도에서 끝나서 좋다. 인테리어의 마지막은 음악과 향기라는 말에 무릎을 탁 쳤던 적이 있는데, 특히 음악이 공간에 주는 영향은 눈에 보이는 그 어떤 소품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샹송 한곡이면 지금 있는 자리가 순식간에 로맨틱한 공간으로 바뀐다. 특히 '장밋빛 인생'이란 제목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샹송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순간, 이 생이 장밋빛깔처럼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곡이니, 있지도 않은 연인이 떠오르며 행복해지는 곡이다.
싱어송 라이터 선생님의 원포인트 수업을 들으며 더듬더듬 코드를 익혔다. 제법 코드가 손에 익고 난 뒤엔, 영어로 번안한 가사를 조그맣게 읊조리며 연주해 보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방치당해 영양실조로 키가 149cm까지 밖에 자라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비행기 사고로 잃고 평생을 술과 마약에 의지하며 살아갔지만, 그럼에도 삶은 장밋빛이라고 노래했던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생을 떠올려보았다.
삶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온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겨우 겨우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가다 보면, 삶은 또 다른 질문을 슬며시 들이민다.
삶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아 질 때,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 물어왔다. 힘들게 쌓아 올린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이젠 어떻게 할래? 라며 콧방귀를 뀐다. 우리는 '남해'라는 새로운 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보는 것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각자 가진 취향을 나누고, 재능을 나누며 작은 공동체 안에서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삶은 여전히 장밋빛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가지고 갈 것은 어떤 물건이 아니라, 인생이 레몬을 줘도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버리며 여전히 인생은 아름답다고 노래할 수 있는 단단하고 유연한 마음이 아닐까. 언제나 내 인생은 '낙, 낙, 낙', 즐거움으로 가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생의 아름다움을 비추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