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곳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공간과 사랑에 빠지는 법

by 장유록

경남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작은 몸이 삼 등신 정도의 신체 비율을 가졌을 무렵부터 여름엔 가족들과 함께 남쪽 바다로 떠나곤 했다. 부모님은 바쁘셨지만,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산 덕분에 여름엔 빠지지 않고 바다에 갈 수 있었다. 너무 어릴 때라 그곳이 정확히 어느 지역 해안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기억 속 바다는 늘 잔잔했고, 까만 몽돌 자갈이 가득했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엔 크고 작은 섬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다. 따뜻하고 여유로운 남쪽 바다였다. 파도가 밀려오고 나갈 때마다 자갈돌이 자글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던 바다에서 손이 큰 우리 엄마가 싸온 음식을 잔뜩 먹었고 짓궂은 외삼촌들의 장난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대학 진학을 이유로 따뜻한 아랫지방을 떠나오면서 한동안 남쪽 바다를 보지 못하였다. 여름이면 친구들이나 연인과 함께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서해나 동해를 찾았다. 감정이 동해바다 파도처럼 넘실대던 나의 이십 대 때는 남쪽 바다를 찾을 일이 거의 없었다.




햇수로 십 년도 훌쩍 넘은 서울생활. 그동안 이태원, 홍대, 성수 같은 상권이 뜨고 질 때마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도시가 주는 즐거움을 누렸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이 도시가 주는 편리함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삼십 대가 되면서 질풍 같던 감정도 차츰 잔잔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부 특유의 시고르 낭만을 보고 느끼며 자랐기 때문일까. 수시로 바뀌는 유행보다는 한결같은 자연이 좋아지는 바이브가 찾아왔기 때문일까. 쉴 새 없는 대도시의 속도가 차츰 버겁게 느껴졌다.



실로 적절한 시기에 남해에서 지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꺼내 보았던 잔잔한 남쪽 바다. 10월에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따뜻한 햇살과 모든 것이 멈춘 듯 느리게 흐르는 거리의 풍경이 고단했던 마음에 쉴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남해에 불어넣은 생기보다 남해가 나에게 준 것이 더 많았다. 그것은 바로 많은 도시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현재에 머물 수 있는 여유'였다.




사실 남해의 속도는 도시의 생명으로 보자면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남해군은 수년 내 사라질 수도 있는 행정구역으로 1~2위를 다투는 곳이라고 한다. 아기의 울음소리도 낙엽 따라 나부끼는 청소년들의 웃음소리도 듣기 힘든 곳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대도시로 다들 떠나고 남은 땅을 노인들이 일구고 있다.




그러나 열일곱 명의 청년들을 남해로 불러들인 사람은 남해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남해를 떠나 도시에서 살다가 다시 남해로 돌아온 청년들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고용 형태가 유연해지면서 아름다운 자신들의 고향인 남해로 다시 돌아오는 청년들이 생겨난 것이다. 서울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풍경과 여유를 즐기면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해 살러'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급기야 도시 청년 유입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우리들을 불러들였다. 남해에는 '남해 살러' 외에도 도시에서 남해로 이주해 온 디자이너들이 모인 단체인 '카카 카'가 있고, 시금치 농사를 지으며 남해 농가와 협업하고 독립 출간물을 만드는 '팜프라'라고 하는 청년단체도 있다. 자신의 전공을 살리면서도 지방의 특색을 활용한 새로운 모양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청년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던 이유는 서울에 대학이 있고, 일자리가 있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기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은 졸업했고, 일은 인터넷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중심점만 있다면, 꼭 서울이 아니라도 대도시가 아니라도 어디에서든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다. 이제는 자신만의 취향에 따라 주거지를 골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 창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풍경은 어떤 풍경인지, 배달음식은 못 먹더라도 제철 해산물은 듬뿍 먹고 싶은지 등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서 주거지를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이나 해외만 생각하던 시야가 지방으로도 넓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남해에서 한 달을 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해에서 아홉 번째 날이었던 2020년 10월 20일. 작은 배를 타고 남해군에 소속된 '조도'라는 작은 섬으로 떠났던 이 날, 나는 도시의 화려함보다는 작은 섬의 여유로움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한 달 살기를 하는 열일곱 명이 세 팀으로 나뉘어 팀별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각기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여행 스타일을 생각했다. 관광지로 소문난 곳을 찾아다니며 맛집을 가는 팀들도 있었지만, 남해의 유명 관광지인 독일마을이나, 금산 말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가보고 싶었다.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땐 유명한 랜드마크를 돌면서 인증숏을 남기고, 블로그에서 유명한 맛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우연히 현지인 친구를 사귀게 되어 현지인들만 간다는 장소에 가보고 한국인이 아무도 없는 골목 식당에 가서 현지인과 합석하여 밥을 먹어본 후, 나는 비밀연애라도 하듯 그 장소와 더욱더 강렬하게 사랑에 빠졌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여행담을 늘어놓을 때면, 그 여행지의 진짜 매력은 오로지 나만 아는 것 같다는 우쭐함이 내내 섞여 나왔다.



그래서 조도로 떠나기로 했다.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 작은 섬으로 떠나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남해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싶었다. 나 이외에도 맛집 같은 것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몇몇이 남해와 비밀연애를 하기 위해 섬에서 끓여먹을 라면과 맥주를 챙겨 여행길에 올랐다.






3년 전 여름, 프랑스 니스 출신의 친구와 함께 니스를 여행했었다. 꿈만 같았던 여행지였지만, 막상 니스에 도착한 나는 너무 많은 인파에 실망스러웠다. 워낙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라 어딜 가든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그저 그런 음식을 헉소리 나는 가격을 지불해 가며 먹어야 했다. 다소 실망하는 듯한 나를 본 친구는 이런 곳도 좋아할지 모르겠다며 자기가 어릴 때 멱을 감으며 놀았던 자신만의 해변에 데리고 가주었다. 자그마한 해변엔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현지 아이들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며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생애 처음으로 다이빙을 하며 깔깔거리며 놀았다. 염도가 높은 지중해는 수영을 잘 못하는 나도 쉽게 물 위로 둥둥 띄워주었고, 바다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멋진 자연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란 걸 했었다. 친구는 니스 사람들이 자주 먹는다는 길거리 음식인 병아리콩으로 만든 빈대떡을 사다 주었고, 수영을 하고 나와 먹은 따뜻한 이 병아리콩 빈대떡이 어떤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음식보다 맛있었다.




남해 미조항에서 작은 배를 타고 15분 정도 바다를 가른 뒤 조도에 내렸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이 니스의 그 비밀 해변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이 좋은 곳에 우리밖에 없다니. 어느 귀족의 사유재산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곳에 우리밖에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만의 비밀이다. 쉿) 이 섬에서 우리를 반기는 것은 오랜만에 본 사람을 보며 격하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한 마리뿐이었다. 청록색 바닷물에 햇살이 부딪혀 부서지는 윤슬 때문에 눈이 멀 것 같았다.




남해군 소속의 섬인 조도는 '큰 섬'과 '작은 섬'이라는 두 개의 섬이 이어져 있는 섬이다. 우리는 선장님 피셜 더 아기자기하고 트래킹 코스가 잘 되어 있다는 '작은 섬'에서 내렸다.





하얀 모래와 에메랄드 색 바다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정말 이 멋진 곳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작은 집 몇 채와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가 우리를 반기는 곳. 이 섬에서 우리는 자리를 펴고 앉아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를 즐겼다. 라면을 끓여 먹고, 맥주를 마시고, 일광욕을 즐기기도 했다. 가져온 책을 읽다 스르르 잠에 빠져버리는 분도 있었다.


너무나 느린 시간이 이상하게도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으니. 이래서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지 모른다고 하나보다. 다들 여유를 즐기기에 바빴지만, 더 늦기 전에 잘 만들어진 트래킹 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섬을 둘러가며 잘 놓인 트래킹 데크를 따라 걸으며 우리는 연신 '우와'를 외쳤다. 이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어떤 책임감마저 느껴졌다. 좋은 것들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 어떤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책임감.




해가 지고 있었다. 마지막 배가 들어오기 전 아쉬운 마음을 누르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여행지에서 빠질 수 없는 점프샷부터 영화 어벤저스 속 영웅들 같은 화보 샷까지 남겼다.




배 위에서 바다 위로 내려앉는 석양을 바라보며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주황에서 연보라색, 남색, 짙은 검은색이 깔리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다시 이 섬을 찾을 수 있을지, 어떤 이유로 내가 이 작은 섬까지 흘러들어 간 것인지, 이 즐거운 인생이라는 영화의 극장표로는 무엇을 지불해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즐거운 기운을 듬뿍 받아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하는 일.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배에서 내려 급히 횟집으로 향했다. 섬을 여행했으니 회를 먹는 것이 당연지사 아닐까. 출출한 우리는 모둠회 대자와 매운탕거리를 포장해 숙소로 돌아왔다. 버스 시간 때문에 가게에서 먹고 돌아갈 순 없었다. 남해는 도시보다 빨리 잠들었다. 하지만 도시보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회를 즐길 수 있다. 숙소로 돌아와 조도의 아름다움을 간증하며 회 두세 점씩 두둑하게 야채에 올려 주린 배를 채우고, 매운탕까지 뜨끈하게 끓여먹었다.


'한 번에 회를 두세 점씩 먹어도 눈총을 받지 않는 바닷가에서 살아야지.'


살고 싶은 곳 조건을 하나 더 추가하며 꿈도 꿀 틈도 없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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