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점을 잇다

남해 한 달 살기 8일 차

by 장유록

2020년 10월 19일


남해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흘렀다. 제법 주변 풍경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익숙해질 법한 시간, 오늘은 일주일 동안 생활한 숙소를 다 함께 깨끗이 치우기로 했다.




우리가 지내는 숙소는 남해 화천마을에 자리 잡은 '꽃내체험활성화센터'라는 곳이다. 1층부터 4층까지 이어진 제법 큰 건물로, 실내에는 작은 노래방부터 찜질방, 넓은 식당, 침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넓고 깨끗한 방도 열일곱 명이 밥도 먹고 작업도 할 수 있는 넓은 식당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노래방이 있는 것이 가장 좋았다. 코로나 사태로 노래방을 오랫동안 가지 못해 내부에서 끌어 오르는 흥을 분출하지 못해 늘 아쉬웠기 때문이다. 각자 방역에 힘쓰고, 자가격리를 마치고 온 우리들은 조금씩 친해지면서 시도 때도 없이 노래방에 가곤 했다. 혼자서도 자주 노래방을 즐겼다. 최신곡은 없었지만, 어차피 최신곡은 잘 모르기 때문에 (조금 슬프지만) 괜찮았다. 그리고 다들 감성이 그다지 최신 감성은 아니었다. 다들 조성모의 '아시나요', 이지훈, 강타의 '인형' 같은 그 시절 발라드를 열창하면서 본인들의 감성에 취해버리곤 했다.





공간이 워낙 넓기 때문에 구역을 크게 나누어서 청소를 하기로 했다. 스스로 셀프 미담을 전파하자면, 내게 제일 먼저 선택권이 주어졌지만 화장실 청소를 자원했다. (나에게 취한다) 대략 각자 구역을 나누어서 열심히 쓸고 닦았다. 워낙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더 애정이 가서 열심히 청소했다. 몸이 머무는 공간은 우리에게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준다.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니 마음까지 개운해졌다.




청소를 마친 뒤엔 다 같이 모여 앉아 야외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먹었다. 마치 이사 온 첫날처럼.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살짝 뿌린 뒤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비비며 정말 남해로 이사 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았다. 배달되는 음식점도, 사람도, 차도, 높은 건물도, 없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파란 하늘과 쏟아지는 별과 바다와 낭만이 있는 곳. 종로의 힙함도 강남의 화려함도 없지만, 별이 많은 날엔 두 시간 동안 별만 바라보아도 지루하지 않은 곳. 함께 이 아름다운 것들을 즐길 친구들만 있다면 기꺼이 도시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후 시간에는 각기 만들고 싶은 소모임을 소개했다. 전공도, 예전에 하던 일도, 취미도 각기 다 다른 열일곱 명이 한데 모였으니, 다양한 소모임이 만들어졌다. 싱어송라이터이신 분은 기타 소모임을 만들었고, 바르셀로나에서 살다오신 분은 기초 스페인어를 배우는 모임을 만들었다. 와인을 마시며 글을 쓰는 모임, 코어를 단단히 다지는 운동모임까지... 도시에 있었다면 찾아가 수업료를 지불하며 배워야 하는 일들을 일상 속에서 너무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침마다 바닷가를 달리며 보았던 남해 해양 쓰레기를 줍고, 깨끗해진 남해바다를 오일파스텔로 그려보는 일명 <애프터 드로잉> 소모임을 기획해 소개했다. 자연이 아름다워야 예술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아무도 참여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열한 분이나 함께 하기로 했다. 코로나 사태로 바깥활동 어려워져 틈틈이 온라인으로나마 그림을 배우길 잘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취미를 함께 즐기기 위해 남해에 오일파스텔을 챙겨 오길 잘했다. 아침마다 남해 바닷가를 달리길 잘했다. 내가 좋아선 한 행동들이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선택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 더 자라났다. 이렇게 자란 마음이 지금의 글쓰기로 이어졌다. 남해에서 채워나갔던 시간이,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이 글로 다시 피어나게 된 것이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아야 살아가며 찍어나간 수많은 삶의 궤적들을 이을 수 있다는 고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지금 이렇게 다시 돌아보니 남해에서 찍었던 점들이,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이 글쓰기로, 또 다른 재밌는 기획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순간순간 찍어나간 인생의 점들이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참 다행이다.




지내는 공간을 쓸고 닦고 서로의 다름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나갈 가능성을 만들었던 남해에서의 8일 차는 이렇게 흘러갔다. 무언가라도 해보자는 마음은 남해바다의 쓰레기를 줍고 깨끗해진 바다를 그려보는 소모임을 만들게 했다. 나중에 어떻게 이어질지도 몰랐던 하나의 점 같은 날이었지만, 이 날은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 어떤 점이든 점을 찍는 것을 멈추지 말자. 춤을 추듯 위아래로 일렁이는 점들을 나중에 뒤돌아 이어 보면 분명히 멋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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