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기를 배우며 하고 싶었던 말들

남해 한 달 살기 7일 차

by 장유록

남해에 내려오고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한 달리기가 일주일째 이어졌다. 달리기 소모임까지 만들어졌다. 매일 아침 7시 30분, 하루를 달리기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건물 앞에 모였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 함께 음악을 들으며 바닷가를 끼고 왕복 3킬로 정도를 가볍게 달렸다. 거리엔 사람도 차도 없었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다 같이 들으며 뛸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나 혼자 달릴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다섯 명이 달릴 때도 있었다. 누구와 함께이든 혼자이든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기로 아침을 열었다.

남해


평소에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었냐 하면 결코 아니었다. 남해에 오고 그 이튿날 얼떨결에 달리기를 시작한 다음, 함께 운동하자는 친구가 있어서 운동시간을 오전 7시 30분으로 정했고, 그렇게 나는 아침 달리기 소모임 리더가 되었다. 남해에 있는 한 달 동안 아침에 비가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3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7시 30분마다 달렸다. 매일 아침 빨리 일어나고 싶을 정도로 남해 생활이 즐거웠고, 아침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바다를 보며 달리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매일 조금씩 체력이 붙으며 숨이 덜 차는 것이 느껴지는 것도 좋았다.



서울로 돌아온 지금도 남해를 떠올리면, 아침마다 달리면서 보았던 남해의 아침 풍경이 가장 그립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던 남해 바다, 오른편으로 보이던 해가 떠오르는 산, 고개를 위로 젖히면 눈이 시리도록 머리 위로 쏟아졌던 파란 남해의 하늘. 그리고 함께 달리던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들. 서울에서는 눈을 뜨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몇십 분이고 뭉그적거렸는데, 남해에서는 보고 싶은 풍경이 가득히 기다리고 있으니 눈을 뜨자마자 이불을 박차고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환경이 삶을 변화시켰다.


아침마다 보던 남해

10월 18일 일요일, 남해에서 7일 차. 일요일도 예외 없이 달리기를 마치고, 승마체험을 갈 준비를 했다. 남해에서 비교적 저렴한 수강료에 승마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해에 가면 꼭 승마체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었다. 어릴 때 제주에서 승마체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즐거웠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남해에서 승마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남해에서 이미 한 달을 지내고 한 달 더 살기로 연장한 한 친구가 알려주었다. 그 친구가 먼저 남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고, 승마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시도해본 덕분이었다. 이렇게 이미 한 달 살기를 끝마치고 한 달을 더 살기로 한 친구는 총 3명이었는데, 이 친구들이 먼저 남해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보고 알아본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도 많이 경험해보고 시도하고 배워서 줄 것이 풍부한 사람이 되어야지. 나중엔 눈에 장난기가 넘치는 이야기보따리가 한아름인 할머니가 될 것이다.


승마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논밭을 가로질러 걷다 보니 마치 옛날 역사같이 생긴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 앞에 웬 돼지들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뜬금없는 조경에 웃음이 터졌다. 이 건물은 게스트하우스로도 사용될 예정이라고 했는데, 코로나 전염병 사태로 건물이 제 용도를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텅 빈 예쁜 건물 앞을 돼지들이 지키고 있었다.



??
누가 이 돼지를 이곳에 둘 생각을 하셨을까 돼지가 행복해보여 좋았다


이 건물을 지나니 바로 승마장이었다. 대표님께서 커피를 내려주시며 환대해주셨다. 이미 승마를 배우고 있던 그 친구 덕분에 대표님께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고 계셨고, 대표님의 배려로 수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신규 수강생을 받고 있지 않고 있다.) 헬멧 등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마사로 향했다. 말들이 고개를 내밀어 새로 온 이방인을 쳐다보았다. 대부분 제주도에서 온 말이었다. 오늘 내가 탈 말은 하도 순해서 승마장 사람들이 가장 아끼신다는 금순이였다. 이름도 어쩜 금순이라니. 금처럼 귀한 우리 금순이와 이날 처음 만났다.


남해의 별명은 보물섬이다 정말 이름처럼 곳곳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


먼저 말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빗으로 금순이 갈기도 빗어주고 에어건으로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말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도 처음이었고, 말 갈기를 빗어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금순이의 눈이 까맣게 빛났다. 오늘 잘 부탁한다며 금순이의 긴 목을 쓰다듬었다.



교관님께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안내해주셨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말은 소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절대로 큰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뒷발에 차일 수 있으니 말 뒤에 있지 말고, 항상 말의 시야 안에 있으라고 하셨다. 주의사항까지 들으니 슬슬 말을 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면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금순이 위에 올랐다. 생각보다 높아서인지 너무 무서워서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낙마 사고에 관한 기사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래도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엉덩이에만 힘을 주고 젖은 낙엽처럼 몸에 힘을 쭉 빼면 말이 알아서 걷는다는 교관님의 말씀을 믿고 차츰 한껏 들어간 긴장을 풀어냈다. 그리고 금순이는 고삐를 당기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셔서 생명끈처럼 붙들고 있던 고삐를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 다행히 착한 금순이는 고삐를 당기지 않아도 알아서 천천히 걸어주었다. 금순이와 나는 동그란 트랙을 천천히 걸었다. 조금씩 시간이 흐르고 긴장이 풀리자 이번엔 금순이가 힘들진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수강시간이 끝나고 말에서 내렸다. 수고했고 고마웠다고 금순이를 쓰다듬자 금순이가 머리를 내쪽으로 해서 살포시 안겼다. 말이 강아지보다 더 사람과 교감을 잘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마사가 아닌 조금 더 넓은 공간엔 금순이보다 더 큰 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말들이 나가서 운동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동그란 트랙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남해에 와서 좋았던 것은 움직임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아침마다 바닷가를 달리고, 갯벌체험을 하고 운동회를 하고 농촌체험을 하면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도시에서는 작은 책상에 앉아서 하루에 8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지쳐서 소파에 누워있다가 침대에 누워 잠들기 일쑤였다. 실내 운동보다 야외활동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공해가 적고 차가 적은 남해는 움직이기 더 좋은 곳이었다.




도시화는 인간과 동물 모두의 삶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다. 숲이 줄며 동물들이 자유롭게 달릴 공간이 줄어들었다. 도시에 남은 동물들은 좁은 곳에 머물며 인간에게 어떤 종류의 이익이든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어쩐지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간도 줄어든 것 같다. 집에서 차 안에서 회사 자기 자리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 많던 공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승마체험이 끝나자 승마장 대표님께서 남해에서 제일 맛있다는 탕수육을 사주셨다. 그리고 일자리까지 제의하셨는데, 남해에 있는 동안 특별활동으로 승마 체험을 하러 오는 초등학생들을 보조해주는 일을 해달라고 하셨다. 이렇게 바로 일자리까지 생기다니 어디서든 먹고는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남해에 일을 하러 온 것은 아니라 알바 제의는 정중히 거절했다. 남해 아이들은 특별활동으로 승마체험을 할 수 있다니 어렸을 때부터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이 자연과 더 많이 교감하면서 사람도 동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그 지점을 찾았으면 좋겠다. 아니, 함께 찾아야겠지.







- 2020년 10월 12일 ~ 11월 11일까지 <한 달 살러>라는 단체에서 모집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온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별일 없다면 매주 토요일 업로드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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