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용기로 사세요(2019)

by 김민주

그럴 용기로 사세요(2019)


익히 봐왔다. 어느 슬픈 소식에 그런 얘길 하는 것은.


그럴 용기로 사세요.


많이 들어본 말인만큼, 나도 익숙하게 그 말을 받아들였던 때도 있었다. 필터가 없어 그냥 수룩하고 흘러들어오곤 했던 것이다.


그 말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 건 내가 본격적으로 조울증을 앓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익숙하게 반복해 온 충동과 절제하려는 노력. 기복, 그 사이에서 헤맬 무렵이면 틈을 비집고 늘 그 말이 따라붙었던 것이다. '그럴 용기로 사세요.'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몹시 경멸한다.


물론, 그 말에 안타까움과 슬픔이 담기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그 말이 참 싫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정말 밉다.


내가 느낀 감정과 충동은, 어느 한 면도 '용기'와 닿아있지 않았다.'용기'의 뒷면에조차. 그건 '용기'보단 포기에 따라 붙은 도망이었고, 삶을 내던지는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에 잠식되는 것이었다. 뭐가 용기란 말이야, 마치 용기를 그 가치에 맞지 못하게 썼다는 듯이 말하지 말란 말이야, 멋대로 용기라고 이름 붙여놓곤. 누가 가장 처음으로 그딴 소릴 지껄인건지 멱살을 잡고 고함을 치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말이 되었다.


당신,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 말하는구나.


며칠 전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다 이야기가 묘하게 흐르더니 기어코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요즘 애들은 너무 약해서 탈이야. 정신적으로 너무 약해.' 아빠, 그건 개인차가 있는거지,라고 화를 꾹 눌러 참고 대꾸 하니 아버지는 '그건 그렇지, 그래도~'라며 물러서지 않고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 막내동생과 셋이서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 내가 화나는 걸 억지로 참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같은 이야기가 이리저리 둘러가며 이어지는 것을 들으며 '망했다'고 생각했다. 얘기가 더 길게 이어진다면 필시 나는 화를 내고 말게 될 것이란 걸 직감한 것이다.


아버지는 감정적인 부분에 있어 나와 잘 맞지 않아 왔다. 감정적인 나완 다르게 이성적인 아버지. 나는 이성에도 감정을 담고 아버지는 감정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분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해의 여름 밤에 똑같이 아버지 옆 조수석에 앉아 말다툼을 하다 도착지에서 내리자마자 차문을 박차고 나가 그 길로 가출을 했었다. 그 때도 이런 식이었다. 서로 닿지 않는 감정과 이성의 대립이었다. 그 후론 아버지와 대화할 땐 감정적 공감이 필요한 주제보단 이성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주제를 택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와 단둘이 있더라도 곧잘 주절주절 떠들어댔지만, 또 그래서인지 우리 사이엔 늘 감정이 결여되어있었다. 그건 관심 주제를 잘 파악하고 선택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혹시'의 충돌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다.


나의 그런 노력을 알 리가 없는 아버지가 기어코 내가 멋대로 만들어놓은 평화협정을 깨부수고 말 것이다.


아버지는 큰 소리를 내거나 흥분하는 것 없이 마치 그날 점심 메뉴가 무어였냐 물어 대답하던 것과 다를 바 없이 이야기를 이었다. 나는 입을 열면 화부터 내게 될 것 같아 일단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이 나와 버렸다. '그럴 용기로 살아야지.'


나도 모르게 고개가 먼저 홱 돌아갔다. 운전하고 있는 아버지의 옆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빠 거기서 용기가 왜 나와? 용기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아버지도 나도, 내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분명 내 눈빛에는 실망과 경멸이 어려있었을 것이다. 아빠의 흔들림 없는 표정을 보고 있는 눈이 너무 뜨거워서 눈꺼풀이 다 녹아 내릴 것 같았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20여 년 전인가, 그보다도 더 전인가 동문이었던 후배의 부고 소식을 들으셨단다. 안면만 겨우 있던 사이라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스러우셨다고. 그래도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 하고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가 가기를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자살을 한 것이라는 말을 전해들은 것이 이유였다. 나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왜? 왜 안갔어?' 그건 실상 확인 사살을 위한 되물음이었다. '그게 맞는거야, 갈 필요가 없는 거지. 교통사고나 병이 나 죽은 것도 아니고, 가질 거 다 가진 놈이 죽긴 왜 죽어. 그럴 용기로 살아야지.'


아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빠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아빠, 그럼 아빠는 내가 죽었으면, 자살하면 장례식장에 안 오겠네? 아빠, 그럼 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살해도 된다는 말이야? 다 가지는 건 뭔데, 무엇들을 가지면 다 가지게 되는 건데? 아빠,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죽는거야.


입천장까지 하고 싶은 말이 입 안 가득 차서 입술 사이를 살짝만 틔워도 줄줄줄 흘러나올 것 같았고 그래서 더 입을 꾹 다물고 입술을 눌러 참았다. 주체할 수 없는 말들을 흐르는대로 흘리는 것도 역시 같은 것 같아서. 머릿 속에 맴돌던 말들이 화가 되어 입 속에서 마구 튀어오르고 있었다.


아빠, 이런 게 용기이지 않을까. 아빠에게 실망하고 아빠를 미워할 용기. 아빠가 정면에 앉아 같은 얘길 하더라도 같은 눈빛으로 아빠를 볼 수 있는 것. 뒷자리에 앉아 말 한마디 없이 듣고만 있던 막내 앞에서 아빠의 그런 말, 그런 생각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게 나라는 것도 말할 수 있는 것. 아빠 딸은 아직 그런 용기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어. 오십 넘게 살아오신 아버지를 고작 스물일곱의 내가 바꿀 재간이 내겐 없고, 내 말에 즉시 반기를 들며, 의견을 굽히지 않으며, 되레 내가 역시 약하다며 질책하는 걸 듣고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퍽 속이 상하게도, 아버지 차에서 내려 뒤늦게 주차를 하고 뒤따라오는 아버지를 등에 지고선 막내동생과 함꼐 먼저 식당으로 들어서며,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멋대로 만들어놓았던 평화협정을 또 멋대로 찢어놓고는.


그리고 이 일을 되돌아 생각하니, 나 역시 마찬가지인 사람인 것이다. 아버지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나는 아버지의 말에 화 밖에 내지 못하고, 나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아버지는 내 마음에 조금도 닿아보지 못할 뿐이라는 것을. 그 모두가 그냥 그 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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