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뚱뒤뚱
고장 난 오리 인형 (2024)
여덟 시 즈음이 되어서였나. 헤드셋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신경을 빼앗겼을 것이다. 어, 아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어 확인해 보니 역시나 맞았다. 몇 번인가 그의 노래를 들었었다. 사실 내가 눈치채지 못한 순간에도 몇 번 이상 그의 노래가 들려왔을 것이다. 그렇게 그의 노래를 스쳐 지나갔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나는 그림을 그리던 손을 몇 번이나 멈추면서까지 그의 노래를 반복해서 틀었다. 노래가 끝나면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이전 곡으로 돌아갔다. 같은 노래가 몇 번이고 들려왔다.
그 노래 때문인 걸까. 아니면 조금 늦게까지 마신 커피 때문인 걸까. 3:32. 아직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열두 시가 조금 넘어서 침대에 누워서도 그 노래를 또 틀어 보고 또 틀어봤다.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게 그 노래를 띄엄띄엄 듣다가 다시 틀어보지 않을 때에는 ‘아아, 이러다가 오늘 못 자겠다’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역시나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밤에 나는 누구를 떠올려야 할까. 습관처럼 떠올리던 누군가를 떠올려보려 하니 마침내 얼굴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기 시작한 게. 어떻게 생겼었더라.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잊을 만 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신에 해 질 녘에 피어오르는 노을처럼 슬며시 물든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 밤을 그이들은 편안히 보내고 있을까. 나의 노래를 함께 들어 주진 않으려나. 나는 오늘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속이 심란한 것일지 나의 노래를 들어주면 혹여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차려 주진 않으려나. 그런 생각을 할 때 즈음 노을이 지고 별이 떠오를 것이다. 컴컴한 하늘이 무서우면서도 그 사이에 뜬 별이 좋아서 저 멀리 산 너머에 무서움을 숨겨 두고 앞으로 걸어 나간다.
별이 뜨면 별을 본다고 미처 나를 보지 못해서, 나는 고장 난 오리 인형처럼 뒤뚱뒤뚱 별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참, 나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무엇을 따라간다구.
그래도 무서움은 저기 산 너머에 숨겨두자. 나는 별을 따라가는 사람이니까. 기어코 따라가게 될 테니까. 이왕 갈 것이라면 무서워하지나 말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