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2023)

벽돌을 쌓아 만든 책상과 의자에서.

by 김민주

선생님께 (2023)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그럭저럭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다시 또, 선생님께 이런저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 이렇게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이 벌써 6-7년은 지난 것 같네요. 선생님을 뵈었던 과거의 어느 날들과, 그리고 선생님을 뵙지 못했던 과거의 어느 날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처음 선생님을 뵈었을 때, 저는 벽돌을 쌓고 쌓아 벽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 작으면서 단단한 벽돌에 저의 결핍을 넣어 두었지요. 내가 가지지 못했던 사랑, 내가 받지 못했던 마음, 내가 잃어버린 시간, 저는 그런 것들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하나의 벽돌에 담았습니다. 또다시 가지지 못할 것, 또다시 받지 못할 것, 또다시 잃어버릴 것들을 벽 너머에 두고 저는 작은 집을 만들어 그 안에 누웠습니다. 처음엔 반드시 하나였을 벽돌이 이윽고 작은 집이 되었을 때, 나는 그곳이 편안하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이 작은 집이 나를 지켜줄 것이므로 나는 다시는 부족함을 가지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 집에 살 적에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벽돌을 한 칸 빼어 내게 보여주었지요. 그리고 벽돌 사이의 작은 구멍 너머에서 저를 그저 보고 계셨지요.

선생님. 저는 그제야 선생님을 보고, 그다음에는 선생님 너머의 다른 것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계속 벽돌을 바라보며 내가 어느 것을 가지지 못했으며, 앞으로 어느 것을 더 가지지 못하게 될지를 가늠해 보았었지요. 허나, 선생님, 저는 저에게 속고 있었습니다. 벽돌을 쌓을 것을 생각해 모든 것이 내게 없는 것이 되었지만, 그건 실은 아직 벽돌이 아닌 것들 뿐이었지요. 제가 앞으로 가지게 될 수도 있는 어떤 것들이었지요. 저의 결핍은 불안이나, 공허, 우울 같은 또 다른 이름의 집을 지었어요. 그 안에 틀어박혀서 저는 계속 같은 벽을 보고 있었어요. 같은 벽을 보며 또 다른 어떤 것마저도 주워다가 집에 맞춰 벽돌을 깎아요. 그건 다시 그저 그런 집들을 만들어 내고요.


저는 이제 변해야 해요. 만들어진 집들을 허물 수 없을지도 몰라요. 허나, 저는 다른 이름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해요. 네모나고 균일한 벽돌이 아니라 그것들을 제 맘에 들게 깎아낼 수 있어야 해요. 어떤 것은 그저 모양이 난 벽돌이 되고, 어떤 것은 벽난로가 되고, 어떤 것은 책상이 되고, 어떤 것은 의자가 되어요. 그리고 나는 그곳에 앉아 그림을 그려요. 벽돌에 넣어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서 다른 모양의 무언가로 만들어요. 벽돌을 쌓아 만든 책상과 의자에서.


저는 또 익숙하게 벽돌을 깎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그게 또 다른 집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어떤 것들의 모양을 그대로 보려고 해요. 텅 비었던 집에 많은 것들이 들어올 거예요. 내가 그린 많은 그림들이 그것들을 모아 올 수 있길 바라요. 그리고 그것들이 나를 채워주길 바라요.


선생님, 저는 여전히 어떤 것을 가지지 못했고, 어떤 것을 앞으로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흘러넘치는 어떤 것을 가지고서, 무엇을 앞으로 가지게 될 것인지 또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고민해요. 선생님이 빼낸 작은 벽돌 하나로부터요.


오늘도 제 얘기만 왕창 하게 되었네요. 집만 짓던 제가 책상과 의자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 뿌듯하여, 선생님께 자랑을 하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문득문득 선생님 생각을 하다가 오늘에서야 선생님께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언젠가 다시 뵐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부디 따듯한 겨울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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