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깐 (2023)

그러니깐 안녕히.

by 김민주

그러니깐 (2023)


잠이 통 오지 않는 밤이면, 잠이 든 당신의 팔에 얼굴을 푹 박아 놓고 잠이 들었어요. 그게 아니면 너의 어깨에 얼굴을 올려 두고선 목을 타고 둥둥 울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요. 혹은 반듯하게 누워 따듯한 그대의 손을 깍지 껴 잡고서요. 그래도 잠이 오지 않거든 창을 타고 들어온 건너편 집의 옅은 불빛에 의지한 채, 눈으로 네 속눈썹을 쓸었다가 콧잔등을 타고 입술을 만지다 참지 못하고 볼을 손끝으로 콕콕 눌러보며 밤을 보냈지요.


사람들과 섞여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카페로 들어갔다. 나는 사람들이 주문을 하는 그 짧은 틈을 타서 카페 밖으로 되돌아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작은 불씨가 입가에 가까워질 즈음까지 담배를 태우다가 손가락을 튕겨 불을 껐다. 나는 사람들과 헤어지기까지 두어 번 정도 몰래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한번,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한번. 담배가 작아지는 걸 보면서, 재가 바람에 흩날리는 걸 보면서, 나에게서 희미하게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면서, 끊어야지, 그리고 나는 그다음에도 또 밖으로 나왔다.


어느샌가 계절이 한 바퀴도 더 돌아서 당신 없이 보내는 두 번째 겨울이 되었네요. ‘10월이 시작되면 넌 내 손을 더 많이 잡았어, 차가운 내 손을 너의 온기로 다 덮어버리게.’ 나는 열대야가 이어지는 한여름에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너의 외투 속에서, 그대의 손을 잡고 꼼지락거리던 내 손을 떠올렸어요. 나는 이제 차게 식은 손끝을 다른 한 손으로 쪼물락거리다가 소매를 당겨 옷 속으로 넣어요. 너와 보았던 세 번의 겨울은 나한테 이런 걸 남기고 말았지요. 어느 노래를 듣고선 차가운 손을 홀로 꼼지락거리고, 마음의 아래 어느 곳에서 너와 봤던 크리스마스 조명을 켜두는 일 같은 것이요. 그 조명 아래에서 애꿎은 낙엽을 발로 짓이겨요. 차가운 바람에 내가 짓이긴 낙엽이 조각조각 날아가는 걸 보면서 나는 애써 조명의 스위치를 당길 거예요. 아직도 너와의 크리스마스가 남은 게 싫어서요.


저도 이제 담배 끊으려고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툭 뱉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몰래 밖으로 나왔다. 아아, 또 나는 찬 공기 사이에 혼자 서서 담배를 피운다. 연기가 훌렁훌렁 날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아아, 하고 탄식을 한다. 담배 피우러 가죠? 술자리 틈에 화장실 앞에서 다시 마주쳤다. 아니거든요? 그리고 볼일을 보고 나와선 총총히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 틈에 섰다. 뿌옇게 핀 담배 연기 사이로 당신이 헤벌쭉 웃는다. 나는 그게 싫어서 서둘러 담배를 끄고 계단을 다시 오른다. 벙벙 울리는 음악 사이로, 나와 함께 온 사람들의 웃는 모양이 떠다닌다. 나는 네가 웃으며 흘리고 간 작은 낙엽 조각을 다시 마음 아래 그 어느 곳에 숨겨두고, 차가워진 손끝을 소매 끝에 감추며 사람들이 웃는 모양을 따라 웃었다.


‘11월이 시작되면 넌 날 더 많이 끌어안았어, 차가운 내 몸을 너의 열기로 다 덮어버리게.’ 그 노래가 또 들려왔을 때, 나는 얼른 버튼을 눌러 다음 노래를 틀었어요. 당신이 자꾸 생각나는 게 싫어. 세 번의 봄, 세 번의 여름, 세 번의 가을, 세 번의 겨울, 고작 세 번이었을 뿐인데. 그다음 봄에도, 지금의 겨울에도 내 옆에 있는 당신이 싫어. 당신은 내가 버리지 못한, 몇 개비 남아있지 않은 담뱃갑이 되었어. 싫으면서도 자꾸 주머니에 남아서 몰래몰래 꺼내 피는 한 줄의 담배.


가습기에서 나오는 여린 무드 등을 곁에 두고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있을 때,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베개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이불을 끌어안았다가, 바로 덮었다가, 둘둘 말아 발아래 두었다가, 다시 끌어안으면서 침대를 뒹굴거렸다. 벌써 시간은 네 시가 넘었다. 잠자리에 누운 지 여섯 시간이 지났다. 옆에 놓인 길죽한 베개를 얼굴 가까이까지 끌어당겼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베개에 얼굴을 푹 쳐 박고서야 둥둥 울리는 심장 소리를 조금 멀찍이 떼어 놨다.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가위에 눌려 깨어 나서야 나에게 이제 밤을 새워 만져볼 뺨이 없다는 걸 알아챈다.


맞아, 나는 아직도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요. 잠이 들지 못하는 밤에도 이제 쓰다듬어볼 뺨이 없어서 쓸쓸히 밤을 지새워요. 그런데 담배는 끊는 게 좋대요. 그러는 게 맞겠지요. 쓸쓸하더라도 담배는 피우지 않는 게 좋다네요. 나도 그러는 게 좋겠어요. 안녕. 당신은 늘 나 없이도 잘 자던 사람이니깐. 너는 우는 날 등 뒤에 두고 곤히 편안한 밤을 보내곤 했으니까요. 그대는 그 여름에 몰아쳤던 폭우를 타고선 나를 등 떠밀어 내보냈으니까요. 그러니깐. 그러니깐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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