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사랑해요 (2024)

고마워

by 김민주

선생님, 사랑해요 (2024)


창 밖으로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온 아이들의 겉옷을 받아 드니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직 눈이 오느냐 한마디 던지니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들어서 저마다 눈이 많이 온다느니, 비가 같이 오는 것 같기도 했다느니, 신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 자그만 몸집에서 나오는 기운들을 느끼면서 웃음을 지었다가도, 수업할 채비를 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손에 든 겉옷을 옷걸이에 끼우고, 걸고, 다시 그 뒤에 서 있는 아이의 옷을 받아 들었다. 그러면서도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였다. 옷을 건 친구들은 각자의 스케치북 앞에 앉혀야 했고, 옷을 걸기 위해 서있는 친구들이 서로 밀치지 않도록 차례차례 세워놔야 했다. 마음이 급해서 내 목소리도 급하게 나오는 걸 느꼈다.


장바구니를 든 엄마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가면서 ‘엄마!’‘엄마! 같이 가!’ 소리를 질러 봤지만, 엄마는 무거운 장바구니 탓에 내 손을 잡아줄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집에 갈 때까지 엄마, 엄마, 하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의 발걸음을 쫓아가기 위해서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야만 했다. 빠르게 찍혀 나가는 발자국만큼 가쁜 숨으로 나는 엄마, 엄마, 하고 엄마를 쫓으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나는 그렇게 손을 잡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그리 크지 않은 내 손에도 한 주먹에 들어오는 작은 손을 잡고 개수대에서 손을 문질러 씻겼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손이 나의 손을 따라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려내곤 하는 걸까. 어떻게 이렇게 예쁜 눈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걸까.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봐주고 있는데, 한 아이가 허공에서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 작은 아이를 보기 위해서 한껏 내려다보니 작은 입으로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하는 것이다. 하얀 눈이 바람에 흩날린다. 바닥에 살포시 앉았다가 아이의 목소리를 타고 녹아내린다. 아이의 입에서 미끄럼 타듯이 나온 그 온기를 가슴에 담고, 나는 아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었다. 빙그레 웃기만 했다.


엄마, 나는 이제야 사랑을 배워. 엄마, 나는 그림을 가르쳐 주고 사랑을 배우고 있어. 학원에 가는 길에, 떨어지는 눈송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을 떠올리고, 오늘 얼마나 신이 나서 학원에 들어올까, 그런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양껏 사랑해 주자고 생각했는데, 결국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하고 눈이 진창 녹아 엉망이 된 퇴근길을 처벅처벅 걸어왔어, 엄마. 내가 해준 건 차가운 손으로 볼을 쓰다듬는 일이었지. 사랑한단 말을 돌려받지 못한 그 아이가, 나처럼 사랑한단 말을 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되진 않을까. 신호에 맞춰 건너기 위해서 뜀박질을 하다가, 눈이 녹아 생긴 물웅덩이를 첨벙 밟았다. 다행히 젖지 않은 바짓단을 확인하고서 나는 또 한 번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눈이 녹아 진창이 된 거리를 걸을 땐, 조심조심 사뿐히 걷자. 사랑해요, 그 말을 들었을 땐, ‘사랑해’를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선생님이 아직 배우지 못한 게 있어서 미안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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