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두 개, 눈사람 하나, 사람 하나 (2024)

용기

by 김민주

동그라미 두 개, 눈사람 하나, 사람 하나 (2024)


어떤 눈사람을 만들었다. 고작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눈사람. 집 앞에 좁은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을 올라가면 집 뒷면을 따라 작은 텃밭이 있었던 것 같다. 올라가 본 적이 없어서 텃밭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텃밭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계단의 첫 번째 칸 위, 구석에 눈사람을 올려 뒀다. 매일 아침 일어나 그곳에 앉아서 담배를 피곤 했기 때문에 좋은 담배 친구가 되어줄 것 같아서였다. 눈사람을 만들어 본 게 언제였더라,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눈사람은 내 생의 마지막 눈사람이 되어줄 것이다. 이런 눈을 맞는 것이 이제는 없을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눈사람을 만들어야 했다. 잠깐 눈을 뭉치는 게 다였을 뿐인데 아프다 싶을 정도로 손이 시렸다.


어떤 눈사람을 다시 만들었다. 이런 눈을 맞아본 게 언제였더라. 손님이 별로 없는 어둑한 가게에서 술을 마셨다. 가끔 한 번씩 밖으로 나와 담배를 폈다. 나갈 때마다 눈이 점점 더 많이 쌓였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만져 보았지만, 아직 눈사람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 손이 차갑다고 생각했는데도 내 손에 닿은 눈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새로운 눈사람이 필요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마지막이 아닐 새로운 눈사람.


그렇게 취하진 않았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눈 사이를 걸어 집으로 향했다. 다들 잘 가고 있으려나, 나도 얼른 가자, 집에 가자, 하면서도 머릿속에 눈사람이 뭉쳐지고 있었다. 이제 눈이 제법 쌓였다. 그 눈이 쌓인 하얀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옆을 지나쳐 멀어지는 뒷모습을 계속 보며 발을 바삐 움직였다. 괜찮을까? 오히려 걷는 게 낫지 않을까? 넘어지지 않으려나? 하염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이가 사라졌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넘어지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넘어지지 않고 잘 갈지도 모른다. 사실 뭐, 내 알 바 아니다.


집 앞에 도착하여, 나는 눈사람을 만들겠다는 핑계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장갑을 낀 채로 눈을 만져 보았지만, 눈이 뭉쳐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장갑을 벗고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그 잠깐 사이에 손이 벌겋게 물들었다. 흰 눈을 만졌는데 빨갛게 물든 손이라니. 눈은 잔인하구나. 빨개진 손 사이로 만들어진 동그라미 두 개가 위아래로 겹쳐지고, 그게 눈사람이 되었다. 손이 너무 시려서 표정을 만들진 못했다. 예전에 만들었던 눈사람보다는 크게 만들고 싶었는데, 딱 그것만큼 만들어졌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작은 눈사람.


내가 자는 사이에 차가운 겨울바람에 떠밀린 눈사람이 눈밭 위를 데굴데굴 구른다. 점점 커진다. 눈사람은 이제 아파트만큼 커졌다. 점점 커진다. 눈사람은 이제 지구만큼 커졌다. 점점 커진다. 눈사람은 이제 우주 안을 채울 만큼 커졌다. 점점 커진다. 눈사람은 이제 우주 안에서도 구르지 못할 만큼 커졌다. 온 우주에 눈이 가득 찼다. 나는 이제 눈사람 안에 살게 된다. 나는 이제 여지없이 눈사람 안에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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