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동그라미지만 양해 부탁드려요
민주에게
안녕, 나야. 어떤 한 주를 보냈어? 꽤나 속이 시끄러운 한 주를 보낸 거 같아, 우리.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해 봤는데. 사실 특별한 게 떠오르진 않았어.
음, 무슨 얘기를 해볼까. 한동안 혼자서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사람들 만나는 일이 잦아진 것 같아. 그렇지?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 '민주님은 사람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평소 같으면 그냥 '어, 그런가요?'하고, 저 사람이 보기엔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헉, 하고 놀라버렸어. 내가 정말 사람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요즘은 나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던 날들이었던 것 같아. 모임을 운영하고 있고, 또 어떤 모임에 들어가 있지.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아이들도 많아졌어. 처음 학원에서 일할 때 기억나? 아이들에게는 살갑게 대하면서도 학부모님들 뵙는 걸 참 어려워했었잖아.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 말 한마디가 어떤 파도가 되진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했고 말이야. 사람들과 나를 생각하면, 말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네. 너한테 말을 한다는 건 어떤 것인지.
너는 참 말이 많아. 내 생각엔 그래. 하지만 말을 하진 않지. 머릿속에 끊임없이 생각들이 떠돌아다니잖아. 어떤 때에는 너무 많은 생각들을 해서, 그걸 어떻게 정리해서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도 있는 것 같아. 그냥, 떠오르는 대로 줄줄 말해버리면 사실 아무 맥락이 없거든. 머릿속에 엄청나게 많은 노트 같은 게 있고, 그걸 전부 펼쳐놓고 제각각 다른 걸 적어놓고 있는 느낌이야. 지금도 이 얼마 안 되는 글을 쓰면서 자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 형체가 없는 다른 생각들 말이지. 보통 그런 생각들을 말로 꺼내놓을 때, 어떤 모양이 될지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말하는 게 사실 무섭기도 해. 말이라는 게 그렇잖아. 나는 어떤 모양을 생각하고 말하지만, 다른 모양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생기곤 하니깐. 생각해 보면 말을 한다는 것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많은 것 같아.
지금 생각나는 건 고등학교 때의 일이네. 어떤 소문에 휩싸였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아주 큰 일이었어. 내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서 오해를 만들고, 그 오해가 사실처럼 떠돌아다니는 일이었어. 그 일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세세하게 떠올리고 여기에 적어놓기 싫은 걸 보니 아주 벗어나지는 못했나 봐. 짧게 자른 머리, 교복 치마가 아니고 바지를 입고 다니는 나.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동아리 부장을 한다던지, 선도부 부장을 한다던지, 여러모로 눈에 띄는 친구였을 것 같아. 처음엔 나한테 뭔가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어. 친한 친구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게 와서 '너 이런 얘기들 하던데, 알고 있어?'라고 했을 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던 너였잖아. 사람의 흠이 되는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그때, 내가 신경을 썼다면 그런 일까진 일어나지 않게 되었을까? 신경을 쓰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였어. 아직도 기억나. 급식소 앞에 친구들과 줄 맞춰 서있었고, 나는 한 친구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어. 그리고 그 앞을 지나가면서 '쟤 애인 바뀌었나 봐.'라고 말하던 어떤 언니의 얼굴과 목소리, 둥글지만 뾰족했던 손가락 끝이. 그 후로 급식소에서 밥을 먹지 않았어. 점심시간이면 하나 둘 우리 반으로, 혹은 옆반으로, 혹은 그 옆반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밥을 먹으러 가던 내 친구 중에 하나가 나 때문에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게 싫었어. 밥을 안 먹는 날이 늘어나고,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점심 저녁으로 도시락을 싸서 학교 뒷문으로 찾아와서 나한테 건네줬어. 나는 그 도시락을 빈교실에 혼자 남아 먹는 것도 싫어서, 학교가 끝나고 독서실에 가서 먹거나 집에 들어가서야 몰래 먹고 도시락통을 내놨어. 그때는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어. 같은 반이었다가 멀어진 친구가, 어느 날부턴가 나와 인사를 나누지 않게 되는 일 같은 게 그런 소문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모두가 그 이야기를 알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떠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누가 내 편이 될 수 있을까, 무서웠던 것 같아. 내가 없는 자리에서 자꾸 나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그 자리에 있던 내 친구가 내게 그걸 전해주는 일들이.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지.
맞아. 여전히 생각하면 괴로운 일이야. 고향에 잘 가지 않게 되는 것도, 고등학교 동창들과 연락을 모두 끊어버린 것도, 그때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야. 맞지? 괜찮아. 그건 누구였어도 괴로운 일이었을 거야. 나는 지금도 니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아. 짧은 머리칼도, 바지를 입고 다닌 일도, 그런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단 걸 알았을 때 무언가 하지 않은 것도, 친구에게 해를 끼칠까 봐 일부러 친구들과 거리를 두게 된 것도, 엄마에게 자퇴를 하고 싶다며 앉아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던 것도, 니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그 일로 니가 말이라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이해해. 너는 너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나에 대해 오해하진 않을까, 무서운 거잖아. 괜찮아. 그런 너를 나는 좋아해.
다만, 이제는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조금씩은 해보았으면 좋겠어. 바보같이 말할지라도, 말하고 사과할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너의 입에서 나온 동그라미가 누군가에게 세모가 된다면 그것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잖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이지 않을까? 당연히 모두가 너를 이해해줄 수 없겠지만, 모두에게 이해받으려고 하지 말자. 너도 모두를 이해할 수 없잖아. 우리 아직 배우고, 익힐 게 많다. 많다는 건, 우리가 더 해볼 수 있는 것도 그만큼 많다는 것 아니겠어?
너는 지나치게 겁을 먹는 면이 있어. 니가 할 수 있는 일들에도 말이야. 니가 바라는 너의 모습이 있다면, 차츰 해나가면 돼. 내가 있잖아. 니가 잘 해내지 못하더라도, 내가 도와줄게. 우리에겐 그런 힘이 있어.
2024. 1. 23. (화)
민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