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에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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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민주에게


민주, 안녕. 어느덧 1월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어. 지난주 내내 감기로 고생했지? 아직도 골골거리고 있지만, 얼른 낫길 바라.


오늘은 병원에 다녀왔어. 3주 만에 가는 병원이었지. 한동안 2주에 한 번씩 진료를 받고 왔었는데. 요즘 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서 3주에 한 번으로 주기가 늘었어. 오늘은 이 얘기를 하려고 해. 병원에 다니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이제 꽤나 익숙하게 병원을 가는 것 같아.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게 얼마나 되었나, 헤아려보니 벌써 5년을 넘겼더라고. 중간에 1년 정도 병원에 안 갔던 시기가 있긴 하지만 말이야. 2019년 봄이었지, 4월쯤이었던 것 같아. 처음 병원을 갔던 날 기억해? 여기저기 병원 앞을 서성거리다가 결국 전화를 하고 예약을 했었어. 예약을 해야 한다는 걸 몰랐는데, 찾아보다 보니 내가 가려고 한 병원은 예약을 해야 하더라고. 처음엔 좀 무서웠지? 난생처음 가보는 병원이었으니까. 음, 게다가 정신건강의학과라니, 낯설 만했어.


잠을 통 못 자고 있을 시기였어. 워낙에도 잠을 잘 못 자긴 했지만, 그쯤엔 정말 심했던 것 같아. 일상생활을 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 잠에 들었다가도 악몽을 꾸며 깨어나기 일쑤였고, 하루에 두 시간 자는 게 정말 많이 자는 날이었어. 그때는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까, 낮에는 카페인과 당으로 하루를 버텼어. 초콜렛을 하나씩 주머니에 넣고 다녔지. 그리고 그때 성인이 되고 난 뒤에 가장 최저의 몸무게를 찍고 있었어. 식욕이 통 없어서 커피와 작은 초콜렛 말고는 먹는 게 없었잖아.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지. 상담을 받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전 해의 우리는 너무 절망 속에 빠져 있었어.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지금 생각했을 때, 그때의 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은 죄책감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공허감. 무기력감. 이런 게 많았던 것 같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어. 우리 가족은 그때 이런저런 힘든 일을 겪고 있었어. 나는 그걸 엄마를 통해서 계속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고. 아무것도 도움이 되고 있지 않은 나와, 힘들어하는 엄마.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기력감에 빠져 들었어. 그 시기에 너무 많이 울곤 했던 것 같아. 너무 많이 울었지. 좁은 방 안에 가득 들어차있던 철제 벙커 침대와 그 아래에 딱 맞게 들어가 있던 책상. 그리고 나는 그 책상에 자주 앉아있었어. 그러고 보니 지금 앉아 있는 책상도 그 책상이네. 지금은 방이 넓어져서 벙커 침대를 쓰고 있진 않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 안에 앉아 있으면서 나는 자주 책상에 머리를 들이받곤 했어. 너무 괴로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거든. 깨어 있으면 자주 그런 생각을 했어. 힘들다는 느낌보단 괴롭다는 느낌이 더 가까웠던 것 같아. 괴로웠어. 살아 있는 게 너무 괴로웠어. 그리고 살면서 그동안 틈틈이 겪어왔던 공허함, 우울함, 무기력함, 그런 것들과 너무 닮아 있었어. 또다시 이런 시간이 내게 찾아왔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괜찮았다가도 자꾸만 찾아오는 이런 시간이, 나에게 '너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거야. 괜찮은 시간 뒤엔 꼭 이런 시간이 너를 찾아올 거야. 그러다가 다시 괜찮아지긴 하겠지. 하지만 그 뒤에도 반복될 거야. 어때, 살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2018년의 겨울은 너와 내가 싸우는 해였어. 한 명은 '괜찮지 않아, 우리는 이걸 이겨낼 수 없어. 끝내야 해.'라고 말했고, 한 명은 '아냐,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무서워. 그만해.'라고 말했지. 우리는 시시때때로 싸움을 일으켰어. 덕분에 나는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를 하다가도 갑자기 머리를 흔들곤 했어. '나가서 죽어.'라고 하는 네 말을 멀리 날려 보내고 싶었거든. 물 안에 들어가 입김을 불면 당연히 보글보글 기포가 생겨나는 것처럼, 자연히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어. 잘 모르겠어. 내가 생각한 건지, 네가 내게 속삭인 건지, 환청을 들은 건지 뭔지. 우리는 길을 가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울고, 계단을 오르다 갑자기 주저앉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발을 구르면서 소리를 지르곤 했어. 눈을 뜨는 게 어찌나 지옥 같던지. 바뀌지 않을 하루가 또다시 시작됐다는 게 너무 절망스러워서 벙커 침대의 난간에 몸통을 기대고 아래로 보이는 방바닥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 뛰어내려봤자 죽진 않겠지, 같은 생각 따위를 했어.


처음 병원에 가던 날. 병원 옆의 작은 골목에 서서 한참 동안 담배를 폈어. 병원에 들어가는 게 긴장됐어.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나는 다른 건 숨기고 그냥 잠을 잘 못 잔단 얘기를 할 생각이었어. 초진 이후에 심리 검사지를 작성하고, 일단 잠을 못 잔다니 다시 오기까지 조금은 편히 잘 수 있도록 작은 약 몇 개를 처방받아 왔어. 오늘을 편안히 잠들고, 내일을 개운하게 맞이할 수 있다니 기대감에 잠이 들었어. 그날은 거의 일 년 만에 편안히, 긴 시간 동안 잠을 잤어. 아침에 일어나는 게 즐거웠어.


요즘은 어때? 나는 대체로 일어나는 게 즐거워. 오늘 무슨 일을 할까, 궁리하고 하루를 기대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물론 가끔 귀찮을 때도 있지. 그럴 때는 조금은 뒹굴거리기도 해.

엄마는 여전히 내가 병원에 다니는 것을 걱정하곤 해. 언제까지고 약에 의존할 순 없다는 얘기를 종종 하지. 조심스럽게, 그리고 단호하게 걱정해. 그럴 때마다 '그렇긴 하지. 노력해 볼게.'라고 대답하는 나지만, 사실 난 엄마 말처럼 약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약 때문에 약해진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 약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생각도 없어.

민주야. 어느 때엔 조울증이란 이름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게 싫을 때도 물론 있어. 거기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조울증이 있어서, 뭐가 있어서, 그래서 난 이거 못 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말이야. 그래서 난 장담할 수 있어. 우리가 그렇게 빠져들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니까, 나와 너는 조울증 인간이 아니잖아? 우리라는 인간에게 조울증이 있을 뿐이지. 엄마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억지로 벗어나려고 하고 싶지 않아. 자연스럽게 지내고 싶어. 언젠가 안 먹게 될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겠지만 말이지.


가끔 그런 시기로 돌아가게 되지 않으려나, 나에게 또 그런 시간이 오지 않으려나, 걱정이 되어서 잠들기 힘든 날들이 있거든. 조금 힘들고, 조금 벅찬 하루들이 이어지는 때에 말이야. 그럼 너는 '거기서 다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이어서 걱정하곤 하지. 민주야. 괜찮아. 너에게 다시 그런 시간이 찾아와도 너는 벗어날 수 있어. 그때와 지금은 아주 많은 게 달라졌거든.

자, 첫 번째로, 너는 그때와 다르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어. 약을 먹고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있어. 네가 어려움을 느낄 때,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어.

두 번째로, 너는 이제 친구들에게 너의 어려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 그때는 긴 시간 동안 아무에게도 그런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면서 자꾸 그 마음을 키우는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달라. 너는 이제 너의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들을 알고 있어.

세 번째, 너는 그 시간을 겪고 이겨냈어. 그건 니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어떻게 이겨내는지, 어떻게 지나쳐 가는지를 알게 됐다는 뜻이지. 물론 다시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면 여전히 힘들게 지나가겠지만 너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야. 그걸 믿도록 해.

마지막으로, 너는 앞서 말한 세 가지를 모두 스스로 알고 있어. 그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지. 어때, 그때와 너, 많이 다르지?


오늘은 병원에 다녀오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을 적어 봤어.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너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을 찾아 먹어야 하는 너도, 가끔은 겁에 질리는 너도, 그런 너의 모든 모습들을 난 좋아해. 아주 많이. 아주 많이 좋아하고 있어. 기특하고 대견해. 나의 이런 마음도 알아줘. 너를 싫어하는 나만 기억하지 말고.


2024. 1. 30. (화)

민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