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육개장
민주에게
안녕, 오늘도 돌아왔어. 지난 편지를 쓰고 일주일이 지났다. 한 주 어떻게 보냈어? 어제는 비가 왔어. 아니, 눈이라고 해야 하나? 눈과 비가 왔다고 해야 하나. 오늘은 아직 나가보지 않아서 날씨가 어떤지 잘 모르겠어. 오늘 조금 더 춥다고 했던가, 조금 덜 춥다고 했던가, 어젯밤에 날씨를 보고 잤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네.
최근에 냉장고를 바꿨어. 지난여름부터 냉장고가 말썽이었거든. 거의 냉장기능을 상실했다고 보면 돼. 김밥 같은 걸 넣어놓으면 다음날이면 먹지 못하게 되었어. 다른 것도 마찬가지고. 그걸 반년 넘게 썼다니 나도 참 알 만 하네. 엄마가 반찬을 보내주면 금방 먹지 못하게 되어서 매번 전화를 해서 ‘반찬 보내지 말라니까~ 다 썩는다고~’하면서 핀잔을 주곤 했어. 반찬을 해서 보낸 엄마 탓이 아니라 냉장고 탓인데 말이야. 오늘은 냉장고와 엄마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해.
엄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최근의 나는 나의 일방적인 애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왜 일방적이라고 하냐면, 나만 애증인 것 같거든. 엄마에겐 나에 대한 증이 없어. 냉장고 얘기를 이어서 해보자면, 냉장고가 바뀌고 나서 엄마가 신나서 반찬이나 김치 같은 것들을 줄줄 보내주고 계셔. 엄마가 정성스레 스티로폼 박스에 직접 포장을 해서 보내주시곤 하는데, 열 때마다 감탄스러울 만큼 꽉 채워서 보내주곤 하시지. 저번엔 말이야, 고기반찬을 얼려서 보내주셨는데 그게 하나가 아닌 거야. 다시 말할게, 종류가 하나가 아니었어. 제육볶음, 불고기, 쪽갈비, 닭볶음탕. 언 고기들을 차곡차곡 새 냉장고에 넣는데 눈물이 나더라. 양념도 제각각, 종류도 다른 고기반찬을 그렇게 하나씩 해서 포장하고 넣어놓기 좋게 얼려 보내주신 거야. 그걸 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아마 하루종일 부엌에 계셨겠지. 엄마는 더위를 많이 타잖아. 겨울에도 음식을 할 때면 더워하곤 했었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요리를 하셨을까? 이건 민주가 저번에 먹고 싶다고 했던 제육볶음, 어렸을 때 좋아했던 닭볶음탕, 장을 보다가 쪽갈비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을지도 몰라, 이것도 해서 민주 보내줘야겠다. 하는 김에 불고기도 해서 보내면 잘 먹겠지? 반찬 보내지 말라고~ 어차피 다 못 먹어~ 요새 집에서 밥도 잘 안 먹어~ 매번 그런 말을 해왔어. 싫었거든. 자꾸자꾸 엄마가 고생하면서 만들어 보내는 음식을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방치해 뒀다가 자꾸만 버리게 되는 일이. 버릴 때마다 죄책감이 느껴지는 게 싫었어. 참 바보 같지 않아? 엄마가 보낸 고기들을 냉동실에 넣어놓으면서 다 먹어야지, 꼭 다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 어우, 이거 쓰면서도 자꾸 눈물이 난다. 이번에도 김치와 각종 반찬을 또 보내주셨어. 배추김치, 무김치, 파김치, 그리고 직접 끓인 육개장, 직접 만든 고추장, 어묵꼬치 여러 개, 낱개 포장된 떡들, 그리고 박스의 남은 틈바구니에 김까지 알차게 넣어서 보내주셨어. 이번엔 신이 나더라고. 와~ 먹을 거 많다~ 엄마는 나를 애증 하지 않아. 너무도 사랑하지.
나는 엄마한테 사랑을 못 받았다고 줄곧 생각해오곤 했어. 그래서 엄마를 미워하는 나와, 엄마를 사랑하는 니가 함께였던 것 같아. 그래서 그게 죄책감이 되곤 했어. 어떻게 엄마를 미워할 수 있지. 엄마를 미워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어. 엄마는 나를 낳아줬고, 엄마는 나를 먹여 살리고, 나를 보살피고,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하고, 많은 것을 희생했는데, 나는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엄마를 미워한다는 것이 내 죄책감이었어. 그 죄책감이 점점 커져서 나는 많은 것을 죄책감 안에 넣어놓곤 했어. 어느 때엔 내 안에 죄책감만 가득하기도 했던 것 같아.
그래, 지금도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 엄마가 내게 했던 말들, 엄마가 내게 했던 행동들, 내게 남은 결핍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 그럼에도, 그럼에도 말이지. 그럼에도 나는 엄마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의 정성 어린 반찬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감사한 마음으로 고기 한 점까지 싹싹 긁어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어제저녁으로 엄마의 육개장을 먹었어. 먹으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예전에 한 번 엄마한테 육개장이 먹고 싶다고 했었거든. 엄마가 육개장은 손이 너무 많이 가~ 집에서 해 먹긴 힘들어,라고 말했지. 엄마는 손을 들여 육개장을 잔뜩 해서 보내왔어. 참 맛있더라. 나는 엄마의 요리가 좋아. 정말 맛있어. 그리고 난 그걸 먹으면서 이렇게나 많이 커버렸고. 엄마의 어떤 면을 자꾸만 파고들면서 엄마를 미워만 하는 게 정말 맞을까. 나에겐 엄마에 대한 사랑도 있는데 말이야. 엄마의 사랑은 엄마의 사랑대로 인정하고, 나의 사랑도 나의 사랑대로 인정하면, 물론 나의 결핍도 인정하면서 말이야. 그 모든 걸 인정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지게 된다면, 내가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 죄책감을 덜어내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예감이 들었어. 국물까지 싹싹 비워낸 빈 육개장 그릇을 보면서.
요즘은 눈물이 좀 적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한 수도꼭지로군.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무뎌지지 못하곤 하는 것 같아. 엄마에 대한 얘기는 무뎌지려고 해도 무뎌지지가 않네. 오늘 저녁도 엄마의 반찬을 먹을 거야. 달걀을 새로 사 왔으니 달걀 후라이도 좋겠어. 엄마가 보낸 새 김치도 맛보고 싶고, 엄마가 만든 고추장도 먹고 싶고, 육개장이 한 통 더 남았으니까 그것도 좋고. 너무 먹을 게 많네. 오늘은 고민이 많은 저녁시간이 되겠어.
우리, 조금 더 어른이 되자. 이건 내 마음 깊숙한 곳의 진실이야. 엄마를 미워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마음은 우리가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인지도 몰라.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너의 마음속 깊은 진실로 남겨두자.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
2024. 2. 6. (화)
민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