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미워하는 나를 사랑해 주는 너
민주에게
어느덧 1월 16일이 되었어. 나에게 편지를 쓰고 꽤 많은 날들이 지나갔어. 참, 버드나무 얘기는 흥미롭게 들었어. 나도 그 버드나무가 기억에 남았거든. 나한테도 특별한 버드나무였던 것 같아. 그 이후로 우리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잖아.
나는 너를 참 미워했던 것 같아. 뭐가 그렇게 미웠을까 생각해 보면 사실 이제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중요한 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도 나는 네가 참 미웠어. 우리의 부족한 것들을 자꾸만 곱씹어 봤지. 요즘엔 말야,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부족한 면들이 정말 우리가 보는 것만큼 부족했을까? 물론, 물론, 정말로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이 정말 많을 거야.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이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사실 엄마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네. 나는 엄마한테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 엄마는 우리에게 늘 부정적으로 얘기하곤 했지. 100점을 맞은 국어 점수보단 60점의 수학 점수를 나무랐고, 잘 그린 스케치가 색칠로 망가진 걸 지적했지. 재수를 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너는 해낼 수 없다고 말하곤, 멋대로 원서를 넣는 사람이었어. 얼마 전에 누군가 나한테 ’ 그때 재수를 했다면 더 좋아졌을 것 같으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 재수를 하고 안 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고 못 가고 ‘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나를 지지해 주는 경험을 하는 게 내게 더 필요한 일이었다고. 여전히 나는 엄마 탓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 문제를 자꾸 회피하려고 하곤 해. ‘나에게 기질적인 문제도 있지 않겠느냐. 환경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야, 오늘 오전에 엄마랑 통화를 하다가, 엄마가 그런 얘길 하는 거야.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면 내가 얼마만큼의 성취를 이뤘는지도 인정할 수 있게 된다고. 100이 한계점인 사람이 200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다 보면, 200만큼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120까지 갔다면 이미 한계점을 넘어 성취를 이룬 것이라고. 그걸 인정해야 한다고 했어. 나는 엄마가 말하는 그 내용보다도 엄마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에 놀라서 ‘엄마, 엄마 왜 이렇게 긍정적인 얘기를 해? 그렇게 긍정적인 언어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잖아.’라고 말해버렸어. 엄마는 본래 긍정적인 사람이라며, 예전엔 너무 생활이 힘들어서 말이 그렇게 나갔다고 그랬지. 나는 그 말에 이해를 하면서도, 억울한 마음이 생기더라.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해야 했어? 차라리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만 하면 내 마음이 더 편했을까? 잘 모르겠어. 나는 그런 사람은 못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이미 그런 틀이 잡혀서 자연스레 긍정적인 생각이 드는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나는 그걸 위해서 노력해야 했어. 먼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생각들에 휩쓸리다가 ‘아, 나 또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해. 나는 어수룩하고, 못 해낼 것이고, 또다시 좌절할 것이고, 또다시 슬퍼하겠지,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어. 제발, 제발, 이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니가 첫 편지에서 나에게 했던 말 기억해? ‘너는 힘들고 괴롭더라도 그걸 끌고, 그걸 이겨내며 혹은 버텨내고 지금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야. 이미 너에게 그럴 힘이 있다는 걸 한 번 증명한 셈이지.‘ 이 말을 꼭, 꼭 해주고 싶었어. 너는 지금도 여전히 좌절했던 사람이기에 또 쉽게 좌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곤 하잖아. 뭐가 그렇게 무서워? 너는 이미 그런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인데. 너는 좌절했던 사람으로 그치지 않았어. 좌절을 이겨내고 지금을 보내고 있어. 니가 고맙게 생각했던 케이크를 기억해 줘. 그게 너의 지금이야. 가끔은, 그래, 누군가에겐 당연한 과정을 나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억울하고, 씁쓸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 하지만 우리 대견해하자. 나는 니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그런 노력을 할 줄 안다는 것이. 너는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또 알고 있잖아. 니가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을 너는 알고 있어. 그게 모두에게 닿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와는 닿아있잖아. 그들이 너에게 굉장히 소중한 이들이잖아. 어느 날의 케이크 같은 사람들.
예전에 니가 말했던 행복에 대한 얘기가 생각나. 너는 니가 행복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했었어. 너는 그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이 세상에 행복이 유한한 양으로 한정되어 있고, 그 행복은 너무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서, 우리 같은 인간이 취하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지.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아무튼, 우리 같은 인간은 어떤 인간이었을까? 어떤 인간이길래, 혹여 행복이 아주 작은 양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했더라도, 우리는 왜 그걸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그렇게까지 우리를 미워했던 내가 참 안타까워. 한편으론, 오히려 그렇게까지 너를 미워했던 그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아서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나저러나 그렇게 된 게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지만. 더 이상 너를 미워하는 마음에 파고들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너를 미워하지 않으니까. 노력하는 니가 멋져. 행복을 소중히 여기고, 그걸 마음속에서 찾아내는 니가 좋아. 너를 죽도록 미워했던 나를 사랑해 주는 니가 대견해. 너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야. 죽도록 너를 미워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잊었던 버드나무를 끄집어 내주는 사람. 제발 받아들여.
오늘은 조금 흥분해서 편지를 썼어. 니가 제발 알아줬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어서. 너도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 내가 널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너도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단언컨대 나도 널 사랑하고 있어.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그럼 슬슬 편지를 줄여볼게. 남은 오늘을 편안히 보냈으면 좋겠어. 오늘의 일기를 기대할게. 이 편지가 네가 일기에 남기고 싶은 한 조각이 되길 바라.
2024. 1. 16. (화)
민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