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가위눌림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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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예고한 것처럼, 전기장판을 최고온도로 설정해 두고 잠들었다. 악몽을 두 개 연달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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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너무 끔찍하여 여기에 적지 못할 것 같다. 짧은 꿈을 꾸고 금방 깨어났다. 너무 끔찍해서 부들부들 떨었다. 괜찮아, 꿈이야, 하곤 나를 토닥이면서 다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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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꿈속에서 나의 친구였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김민주의 친구였다. 사이가 좋지 않은 어머니가, 김민주의 그림을 사고 싶어서 염치도 없이 꿈속의 나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통을 붙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싸웠다. 통화를 마치고 졸업앨범을 펼쳐 봤다. 교탁 앞에 학생이 하나씩 서있는 사진이 페이지 하나에 꽉 차게 한 장씩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모두 죽어있는 모습이었다. 한 장씩 넘겨보다가 모두가 그렇게 되어있는 걸 보고 남은 페이지를 통으로 잡고 후루룩 넘겨 살펴보았다. 모두 그런 사진이었다. 그중에는 김민주가 쓰러져 있는 사진도 있었다. 너무 소름이 끼쳐서 졸업앨범을 두고 뛰쳐나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김민주가 되어 모로 누워있었다. 누군가가 내 얼굴 앞에 둔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쟤, 니 사진 볼 때 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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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별 의미 없는 꿈이었겠지만,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는 그 느낌과, 내 얼굴 근처로 느껴졌던 인기척, 무게감 같은 게 생생해서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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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캄캄한 방 안이 너무 무서워서 옴짝달싹 못하다가,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있을 동생이 생각나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동생 방 방바닥에 누워서 꾼 꿈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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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악몽도 자주 꾸고, 가위도 자주 눌렸었다.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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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론 중학생 무렵부터 시작된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추측하기로는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랬던 것으로 생각된다. 귀신을 믿으면서도 믿고 싶지 않아 하는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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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동생이랑 함께 자던 때였어서, 동생이 내 엄지손가락을 잡고 잠에 들었다. 나는 또 가위에 눌릴까 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어김없이 가위에 눌렸다. 그때의 동생과 나 사이에는 사인이 있었다. 잠자는 나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거나, 이상한 박자로 숨을 쉬는 것이었다. 가위에 눌려도 그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었다. 그럼 동생이 잠결에도 내 엄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줬다. 손가락을 움직이면 가위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효과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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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처음 보는 아저씨가 찾아왔다. 엄마가 모시고 온 그 아저씨. 동생들을 모두 방에 들여보내고 나만 불러다 앉혀놓았다.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던 아저씨가 나를 보며 ‘눈이 다 죽어있네.‘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집의 여기저기에 물을 떠놓은 그릇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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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가서는 가위눌림이 더 심해져서 하룻밤 사이에도 몇 번씩 가위에 눌렸고, 나중에는 잠을 안 자기 시작했다. 가위에 많이 눌리다 보면, 잠자리에 누웠을 때 가위에 눌릴 것 같은 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런 때는 벌떡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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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일찍 가는 날이 많았고, 야자를 하거나 미술학원을 가거나, 그것이 끝나고 독서실에 가거나 하면서 하루가 긴 날이 많았다. 잠을 자지 않고 그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이었겠지? 나는 그때 내 건강을 많이 깎아먹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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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땐가부터 쉬는 시간에는 항상 잠을 자고 있었다. 다른 이유로 학교에서 밥을 잘 안 먹게 되면서부터는 점심, 저녁 시간에도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학교에서 자는 동안에도 종종 가위에 눌려서 벌떡 일어나곤 했다. 수업시간에도 곧잘 졸아서 교실의 뒤편에 서서 수업을 듣는 시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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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엔가, 절에 간다는 엄마를 따라나섰는데 절이 아닌 곳에 도착했다. 알록달록한 천들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었다. 엄마, 아빠가 방석을 하나 깔아 두고 계속 절을 했다. 한 다섯 걸음 정도 앞 쪽에 한 남자가 북을 치고 있었고, 한 여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나에게도 절을 하라고 했지만 하지 않고 꼿꼿이 앉아있었다. 돈뭉치를 여러 번 상 앞에 올려두고 돌아와 다시 절을 하는 아빠를 보고 너무 끔찍한 기분이 들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것이 모두 끝날 때까지 아빠 차에 갇혀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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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가서도 가위눌림은 계속되었지만, 졸업할 무렵이 되니 안 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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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점점 가위눌리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어젯밤처럼 어쩌다 한 번씩 눌리는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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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어서 쓰는 어떤 짧은 글.